파우스트 -사진 제공 성남아트센터
“지방의 문예회관 극장들은 언젠가 월드컵경기장 꼴이 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수도권은 물론 대전, 전주, 양산, 김해 등 지방 곳곳에도 수백억 원을 들여 지은 문화공간이 생겨났다. 그러나 화려한 외관과 달리 질 높은 공연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유치가 어려운 것이 난점으로 꼽혀 왔다. 언제까지 서울에서 펼쳐지는 대형 작품의 지방순회 공연에만 기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지역의 공연장 두 곳이 직접 나서서 수준 높은 작품을 자체 제작하는 실험이 공연계의 화제다.
○성남아트센터가 제작한 오페라 ‘파우스트’
10월에 개관한 성남아트센터는 12월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수준에 버금가는 개관 기념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특히 24∼27일 국내 무대에서 10년 만에 공연되는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오프닝 페스티벌의 백미로 꼽힌다. 8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으며 100여 명의 합창단과 무용단, 60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된다.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은 오페라를 자체 제작한 경험이 있지만 지방공연장이 대작 오페라를 자체 제작하는 것은 드문 일. ‘파우스트’는 총 5막으로 이뤄진 그랜드 오페라로 ‘보석의 노래’ ‘순결한 집’ ‘금송아지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아리아와 대합창뿐만 아니라 왈츠 등 춤의 향연까지 펼쳐져 볼거리가 풍성하다.
주역 가수 6명은 모두 유럽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성악가로 구성됐다. 파우스트 역을 맡은 테너 나승서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역의 베이스 사무엘 윤은 1998년 이탈리아 달 몬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유럽에 데뷔했던 주인공이다.
올해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탈리아 지휘자 오타비오 마리노와 연출자 이소영이 다시 호흡을 맞춘다. 또한 무대 디자이너인 박동우와 안무가 박호빈이 이끄는 ‘까두 댄스 씨어터’도 참여했다.
성남아트센터 조성진 예술감독은 “오페라의 경우 유럽에서도 극장들이 주도적으로 제작하면서 발전해왔다”며 “앞으로는 중소 규모의 오페라도 제작해 공원의 잔디밭이나 호수 위 등을 무대 삼아 시민들을 찾아가는 공연을 적극 펼치겠다”고 말했다. 031-783-8000
원작과는 달리 원수지간인 두 가문이 화해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 김광보 연출의 록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경기지역의 8개 문예회관이 공동 제작했다. 사진 제공 경기지역문예회관협의회
○문예회관 공동제작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경기지역의 8개 도시 문화예술회관은 록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동 제작해 새 활로를 찾고 있다. 대학로의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 김광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인 의상과 록음악에 맞춰 재해석한 이 작품은 과천시민회관(11월 25, 26일), 의정부예술의전당(12월 2, 3일), 부천시민회관(12월 9, 10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12월16,17일), 안양문예회관(12월 22, 23일),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12월 28, 29일)에서 공연된다. 내년 1월에는 군포시문화예술회관, 오산문화예술회관, 3월에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과천, 의정부, 부천 등 8개 문예회관이 각 3000여 만 원을 투자하고, 복권기금사업 지원금까지 더해 총 3억2000만 원이 제작비로 투입됐다.
이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두 젊은이의 순수한 사랑을 비극으로 몰아간 현대사회의 어두운 권력에의 욕망을 로미오의 친구 머큐소의 목소리로 강하게 비판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후에는 몬테규와 캐플릿 두 집안이 화해한다는 전통적 결말과 달리 전쟁을 벌이는 신으로 충격적 결말을 맺는다. 2002년 뮤지컬 ‘바람의 나라’를 마지막으로 연출했던 김광보는 “모처럼 연출하는 뮤지컬 작품인 만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을 만들겠다”며 벼르고 있다.
프로듀서인 남기웅 씨는 “자체 예산이 부족한 지방예술회관이 공동으로 기획, 투자, 마케팅을 벌이는 이런 제작은 위험도를 줄이고 질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02-744-030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