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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처럼 굴지 마!”…소수인종 학생 따돌림 당하기 일쑤

입력 | 2005-11-17 03:07:00



‘백인처럼 군다(Acting white).’ 미국에서 우등생인 데다 표준 영어를 사용하고 토미 힐피거나 FUBU 대신 백인들이 선호하는 갭이나 애버크롬비&피치 상표 옷을 입는 흑인 청소년은 흔히 친구들에게서 이런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미 상원의 유일한 흑인인 바랙 오바마(44) 상원의원이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를 강력 제기해 사회 이슈화하기도 했다.

‘백인처럼 굴기’는 그저 모호한 유행어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사실 백인처럼 행동하는 청소년들의 따돌림 문제는 미 중고교 전반에 퍼져 있는 일반적 현상일 뿐 아니라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롤랜드 프라이어 하버드대 조교수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에듀케이션 넥스트’ 2006년 겨울호에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소수인종 학생들이 따돌림을 당하며 치러야 하는 희생이 매우 심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실었다.

프라이어 교수는 미국 175개 학교 10대 청소년 9만여 명의 연방정부 건강조사(Adhealth) 통계자료 중 학생들이 작성한 ‘내 친구’ 목록 등을 토대로 동료 그룹 내 인기도와 학업 성적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계 학생의 인기도-성적 상관관계는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백인 학생의 경우 학업 성적이 높을수록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도 높았다.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의 경우 성적이 높으면 오히려 인기도가 크게 떨어졌다. “백인처럼 굴지 말라”는 또래 집단의 압력과 그에 따른 자기태업(self-sabotage)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

‘백인처럼 구는’ 학생을 따돌리는 현상은 흑인보다 히스패닉계 학생에게 특히 심했다. 평균 성적 4점(모두 A학점)을 받은 백인 학생은 명실 공히 ‘짱’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반면 같은 성적의 히스패닉계 학생은 인기가 바닥인 ‘왕따’ 대상으로 나타났다. 4점을 받은 흑인 학생의 경우 최하위 성적을 받은 친구와 비슷한 낮은 인기도를 보였다.

나아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비교 분석한 결과 공립학교에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학교는 전체의 6%에 불과하지만 소수인종 학생에 대한 ‘왕따’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학생 관리를 자랑하는 사립학교의 이점이 증명된 셈이다.

또 역설적인 대목은 소수인종 학생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 공립학교일수록 문제가 두드러졌다는 점. 흑인 학생 비율이 80%를 넘는 공립학교의 경우 좋은 성적이 학생의 인기도에 역효과를 낳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것.

프라이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흑백 통합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낳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인정했다. 그래서인지 해결책에 대해선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