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들은 회의 마지막 날인 19일 화려한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부산 동백섬 누리마루에 늘어서서 사진 촬영을 한다.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은 16일 그동안 은밀히 만들어 온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공개했다. 부산=이종승 기자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21개국 정상이 두루마기를 입고 등장하는 사진 촬영. 각국 정상은 어떤 색깔의 두루마기를 입고 한복 맵시를 자랑할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남색,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은색 두루마기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황금색이나 갈색 중 하나를 입을 예정이다.
여성인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각각 분홍색과 보라색을 선택했다.
APEC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이 미리 각국 정상에게 옷감을 보내 고르게 한 결과 황금색을 꼽은 정상이 많았다. 기획단은 각각 2가지 색상을 선택하게 해 색깔이 과도하게 중복되지 않도록 했다. APEC 전통의상 자문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정상들이 ‘옷을 미리 보고 싶다’고 하는 등 한복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국 고유의 비단 ‘자미사(紫薇紗)’로 만들어진 두루마기에는 소나무 대나무 모란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십장생(十長生)을 바탕으로 하되 동물 문양을 꺼리는 이슬람 국가를 배려했다고 준비기획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APEC 정상들이 입을 두루마기는 외국인이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일부를 개량한 것이 특징. 고름은 미리 매듭을 지어 달았으며 똑딱단추로 옷깃을 여미게 돼 있다. 또 11월 중순의 쌀쌀한 한국 날씨를 고려해 솜을 넣었고, 전통 한복에는 없는 안주머니도 달았다.
1993년 프랑스 파리의 패션쇼인 프레타포르테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했던 이영희(李英姬·69) 씨가 디자인했고, 자문위원회가 선정한 한복 명장들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한복 바느질 솜씨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전국의 명장들이 두루마기를 지었다.
부산 지역에서는 한복 명장인 김영재(金永才·69) 류정순(柳貞順·55) 이재순(李載淳·70) 씨가 제작에 참여했다. 명장들은 ‘APEC에서 공개하기 전까지는 두루마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각자의 작업실에서 묵묵히 한복을 지었다.
부산=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