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행정정보 공유시스템을 3년 전에 만들어 놓고도 활용하지 않아 국민이 연간 2억6000만 통의 민원서류를 불필요하게 발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달 말부터 감사원과 함께 실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첨단 시스템 ‘낮잠’=정부는 인터넷에서 민원서류 위변조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서류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가 시스템 보완을 거쳐 발급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행정기관 간에 정보를 공유해 민원서류의 내용을 확인토록 하겠다는 대책을 9일 발표했다.
하지만 본보가 행자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2002년 11월에 민원서류 20종에 대한 행정정보 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민원인이 행정기관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다른 행정기관에 내는 불편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원 관련 법령에 ‘행정정보의 공동이용을 통해 (민원인의) 구비서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는 서류를 갈음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행정정보 공동이용 확인 가능 시 (민원서류) 제출 생략’이라는 내용을 공무원 업무지침인 ‘민원사무 기준표’에 명시했다. 행정전산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담은 민원서류는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시군구와 읍면동은 최근까지 모든 서류를 민원인이 내도록 했다.
▽국민 1인당 연간 5시간 허비=현재 행정기관이 발급하는 민원서류는 289종. 연간 발급량은 4억4414만2000여 통(지난해 기준)에 이른다.
행정정보 공유시스템에 따라 민원인이 내지 않아도 되는 서류는 주민등록등초본 등 20종으로 발급량으로는 전체의 83.7%(3억7165만6000여 통)에 이른다.
민원서류의 70%가량이 다른 행정기관으로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발급한 4억4414만여 통 가운데 2억6000여만 통을 불필요하게 발급받도록 했다는 얘기다.
민원서류를 떼서 다른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시간을 평균 1시간으로 잡으면 국민 1인당 연간 5시간 정도를 낭비한 셈.
일선 공무원이 서류를 발급하느라 사용한 시간(1통에 2분 계산)도 866만 시간으로 공무원 4500여 명의 연간 근로시간에 해당한다.
▽왜 관행을 못 바꿨나=민원 사무를 처리하는 일선 공무원에 대한 지도와 감독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행정정보 공유시스템을 갖추면서 법령과 사무지침을 고치고 모든 민원담당 공무원에게 ‘행정전자서명’이라는 인증서까지 내줬지만 실제 사용하는지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일선 공무원 입장에서는 전산망을 통해 민원서류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번거로워 민원인에게 서류를 떼어 오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행정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민원서류를 받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는 전북 부안군 등 극히 일부였다.
행자부는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 감사원과 합동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또 ‘행정정보의 공동 이용을 통해 구비서류를 갈음할 수 있다’는 문구를 ‘○○서류는 반드시 담당 공무원이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꿀 계획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일선 공무원들에게 여러 차례 행정정보 공유로 확인이 가능한 민원서류는 받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는데도 일선 지자체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실태조사 등 현장감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