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여, 시인이란 왜 그대들이 고독한지/그것을 말할 수 있기 위해 그대들한테 배우는 사람들이오.…”
어느 해 가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속삭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무엇이든 저희들에게 일어나게 해 주소서!/보시옵소서. 생명을 향해 저희들이 몸을 떨고 있음을./한 가닥 광채처럼 한 가닥 노래처럼/저희는 솟아오르고 싶습니다.”
프라하에서 나고 유럽을 두루 방랑했던 눈이 큰 시인 릴케는 내가 문학이라는 두려운 문을 돌연히 열고 들어가 그곳에다 주저 없이 생애를 던지게 만든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첼로의 음률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그의 시편들과 소설 ‘말테의 수기’를 읽으며, 나는 죽음의 씨앗을 품고 태어난 인간과 어둡고 불안한 도시 파리의 고독한 풍경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과 절망,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함몰해 가며 저 거대한 명제인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나의 미숙한 생 위에다 젖은 옷처럼 얹어 놓았다.
노르웨이의 한 고독한 시인을 모델로 썼다는 ‘말테의 수기’는 일관된 주제 없이 71편의 단편적인 수기 형태로 이뤄진 소설이다.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한 시혼(詩魂)이 응시한 풍경들을 내면으로 깊이 끌고 가서 쓴 뻐근한 통찰의 기록인 것이다.
개인의 고유한 삶이나 죽음은 없고,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절망적인 병원의 풍경, 환멸 혹은 불안의 체험을 기록한 이 소설은 결국 말테라는 이름으로 대변된 시인 릴케의 위대한 예술가적 몸부림의 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릴케는 그때 조각가 로댕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건너가서 그를 통해 사물을 보는 눈을 배우게 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소설엔 잿빛 공간에서 미로와 같은 삶을 영위하는 고독한 모습들이 포착된다. 융단의 그림을 통한 회상이나 죽음에 대한 고찰, 원형극장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빛을 발한다.
불안한 인간상들이 만들어 내는 빈곤과 죽음의 대량 생산을 목격하며 그는 삶의 절망적인 본질을 응시하게 되고 이는 결국 그의 아름다운 시혼으로 승화된다.
릴케는 한국문학에도 어느 시인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어디를 다시 펼쳐도 시퍼런 감각과 성찰이 살아 있는 ‘말테의 수기’에서 나는 시간의 덧없음을 견디어 낸 진정한 고전을 목격하게 된다.
“인생에는 초보자를 위한 학급은 없고 언제나 마찬가지로 처리해야 할 지극히 힘든 일이 있을 뿐이다”라는 대목을 다시 음미한다. 이어서 고트프리트 벤이 그를 향해 터뜨린 아름다운 탄식을 떠올린다.
“백혈병으로 죽어서, 프랑스의 칠현금이 울어대는 론의 청동색 언덕 위에 묻힌 인물, 위대한 서정시의 샘은 우리 세대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다음의 시구를 썼던 것이다.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극복이 전부인 것을!”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린 후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음으로써 5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인의 신화를 완성시켰다. 스스로 쓴 묘비명이 눈부시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그 누구의 잠일 수도 없는 기쁨이여.”
문정희 동국대 석좌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