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5월 18일 백악관.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12개 의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성명의 마지막 부분에서 존슨 대통령은 “한국의 공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연구기관의 설립과 지원을 제안한다”고 말했고 박 대통령은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는 당시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대한 존슨 대통령의 ‘특별한 선물’이었으나 그때는 다른 의제에 가려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최형섭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그 후 1년간의 준비를 거쳐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설립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미국 독일 등에서 일하던 젊은 과학자들을 불러들였다. 아파트 한 채씩을 거저 주었고, 월급은 대학 교수의 세 배를 약속했다. 최형섭 소장이 박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하자 “나보다도 많이 받는구먼” 하면서도 즉석에서 승낙했다고 한다.
▷하이테크 산업의 발전과 함께 세계 각국의 두뇌유치(brain gain)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한 해 2만 명 이상의 해외유학파가 귀국하고 있고 이들이 창업한 정보기술(IT) 기업이 베이징에만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상하이 시는 지난해 ‘홍콩 인재 1000명 유치작전’을 세우기도 했다. 이에 맞서 미국 영국 독일 등은 두뇌유출(brain drain)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세계은행은 가난한 나라의 두뇌유출이 빈곤의 고착화를 초래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가나, 모잠비크, 우간다, 자메이카, 니카라과 등은 대졸 이상의 고급 두뇌가 대부분 고국을 떠나 선진국에서 살고 있고 이것이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본보의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이공계 인재 10명 중 4명이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응답했다. 외국에서 공부한 고급 인력이 귀국을 꺼리는 현상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년 전 ‘KIST 설립 정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