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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4년 독도수비대 日침공 격퇴

입력 | 2005-11-21 03:02:00


1954년 11월 21일. 이날 역시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 섬 주위를 돌아보는데, 전방 1km 해상에서 일본 함정이 독도를 향해 오고 있지 않은가. 좌우를 보니 오른쪽, 왼쪽에도 일본 함정이 보였다. 하늘에는 비행기. 이것들이 완전히 포위 상태에서 독도를 공격하는구나.

막사 안에 뛰어들어 “비상”을 외치고 쌍안경을 들어 확인하니 1000t급의 일본 함정 세 척이었다. 우리 대원들은 기민한 동작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명령만 기다렸다.

서서히 다가오는 일본 함정. 긴장된 얼굴의 대원들. 누구 하나 말없이 응시하는 눈빛.

일본 함정은 700m에서 600m로 다가오고, 마침내 소총 사거리에도 들어왔다.

‘탕!’ 한 발의 권총 신호와 함께 독도가 떠나갈 듯 총성이 울려 퍼지고, 6·25전쟁 때 명사수였던 특무상사 출신 서기종이 쏜 박격포 제1탄이 한 척에 명중되어 뱃머리에서 몇 사람이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치명상을 입은 일본 함정은 동쪽으로 사라져 가는데, 비행기만은 계속 독도를 선회하면서 위협하고 있었다. 한 눈도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대공전 자세로 완벽을 기하자 사태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비행기도 동쪽 하늘을 향해 사라져 갔다. 일제히 일어선 대원들은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부둥켜안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1956년 12월 30일 우리는 독도 상륙 3년 8개월 만에 무기와 임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1929∼1986) 씨. 그가 남긴 장문의 수기에서 ‘독도대첩’으로 불리는 그날의 상황을 발췌한 내용이다.

당시 독도는 치안, 아니 주권 공백지대였다. 전쟁 뒤의 어수선한 틈을 타 일본은 독도를 안방 드나들 듯이 했다. 일본 영토 표지를 새기고, 우리 어부의 위령비를 파괴하는 등 갖은 난동을 피웠다. 이에 독도 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홍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참전 경험이 있는 33명의 청년들이 분연히 일어나 순수 민간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무기라고 해봐야 박격포 1문에 기관총과 소총이 고작. 그러나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쳤던 이들은 열악한 전력에도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에 버금가는 독도대첩을 이뤄내고야 만다.

물도 나오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자비로 무기와 식량을 구입해 3년 8개월여에 걸친 전쟁을 치렀던 젊은이들. 이들의 치열한 민족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