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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디세이]강렬한 충격 긴 여운 넋을 잃고 주저앉다

입력 | 2005-11-21 03:03:00

최근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서 235억 원에 팔린 마크 로스코의 ‘마티스에 대한 경의’.


기자는 ‘스탕달 신드롬’을 믿지 않았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이 미술품을 관람한 뒤 심장이 뛰고 무릎 힘이 빠지는 경험을 했대서 유래한 이 말은 뛰어난 미술품을 보았을 때 관람자가 겪는 일종의 충격을 말한다. 하지만 기자는 한때는 이를 그저 문화적 허영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기자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스위스 바젤 바이엘라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작품 앞에서였다. 하얀 방에 걸려 있는 가로 2m, 세로 3m의 대작 6점. 직사각형으로 길게 걸린 대형 캔버스 안에는 아무런 형상도 없이 2가지, 혹은 3가지 색만 사각으로 대비되어 칠해져 있었다. 작품 제목도 ‘초록, 빨강, 그리고 오렌지’ ‘검정 위의 옅은 빨강’ 같은 것들이었다.

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제목과 이미지 앞에서 기자의 발길은 얼어붙은 듯 멈췄다.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커다란 사각형의 색면들이 시선을 빨아들였다. 이윽고 점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쉬는 듯,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주변의 사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색으로 뒤덮인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착시를 경험했다. 어지러웠다. 전시장 한가운데 관람용 의자에 털썩 앉을 수밖에 없었다.

로스코가 알고 싶어져 그의 화집도 사고 자료도 구했다. 그는 유대계 러시아 사람으로 지금의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간 이민자였다. 이민 이듬해에 아버지가 죽었다. 열한 살 때였으니, 어릴 적 일찍 죽음을 접한 사람들이 빠지기 마련인 허무의 덫에서 그 역시 평생 자유롭지 못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일대에 입학함으로써 미국 주류 사회로의 진입이 이뤄지는가 싶었지만 당시 반유대주의 물결로 장학금이 취소되어 2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그리고 시작한 게 그림공부였다. 거의 독학으로 화가가 된 그는 초기에는 신화에서 소재를 딴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다 이후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색면 추상회화’라 불리는 양식을 만들어 냈다. 붓 대신 스펀지를 사용해 깊으면서도 부유감을 느끼게 하는 그의 색면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를 추앙했다. 그러나 그는 삶의 정점의 시기였던 쉰일곱 살에 권총 자살했다. 우울증 때문이었다.

세속의 모든 것을 얻었으나 채워지지 못했던 영혼의 갈급함은 결국 그의 화면과 생의 의지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초기의 밝고 따뜻했던 색들은 후기로 접어들면서 어둡고 차가운 색으로 변해갔다.

최근 외신은 그의 그림 한 점이 우리 돈으로 무려 235억 원에 팔렸다고 전했다. 천문학적인 화폐단위가 불러 온 메마른 느낌과, 기자가 느꼈던 감동을 수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몇 년 전 그날 뇌리에 박힌 강렬한 이미지가 이후 여운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머릿속에 떠오른다. 일상이 지겨울 때마다, 숱한 말과 글과 사람에 치일 때마다, 모든 것을 오로지 ‘색’ 하나로 말하려 했던 한 이국의 사내, 게다가 죽고 없는 그를 생각하면서 함께 절망하고 희망했다. 그것은 언어가 미칠 수 없는 영역과의, 산 사람들과는 나눌 수 없는 영역과의 또 다른 교감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