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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조현진]한국 하면 떠오르는 것, 있습니까

입력 | 2005-11-23 03:05:00


기대와 우려 속에 개최된 제13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막을 내렸다.

5억1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유치 양해각서가 체결됐고, 세계적인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가 서울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경영총괄본부를 설립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APEC 최고경영자회의에는 1996년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800여 명의 경제인이 참석했고 역대 최다인 9명의 국가 정상이 기조연설에 나섰다. 참가한 정상들과 기업인들은 자유무역의 중요성과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조류 인플루엔자나 지진과 같은 위협 요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는데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을 홍보하는 매우 소중한 자리였다는 평가다.

또한 APEC 회의 개최로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의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 자신 있게 뛰어들게 됐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가치도 한층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KOTRA의 산하 기구로 외자유치 업무를 담당하는 ‘인베스트 코리아’에 근무하는 필자로서는 ‘앞으로 일하기가 훨씬 쉬워지겠구나’ 하는 기분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세계 어느 국가를 둘러보더라도 한국만큼 세계적인 이벤트를 통해 자국을 효과적으로 홍보해 온 국가는 없는 것 같다. 6·25전쟁 이후 폐허와 빈곤의 이미지로만 인식된 아시아의 변방 국가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세계지도에 확실히 자리 매김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해서는 한국의 문화상품이 아시아 지역을 강타하는 한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쿨 코리아(Cool Korea)’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번 APEC 회의에서는 아인슈타인 로봇과 휴대인터넷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확실한 정보기술(IT) 강국의 인상을 심어 줬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국가 차원의 이미지를 진정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올림픽 월드컵 APEC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외국인 특히 경제인들은 한국 하면 ‘북한 핵 위협’이나 ‘강성 노조’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먼저 떠올린다.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대규모 국제행사는 국가 이미지를 널리 알릴 좋은 기회다. 당분간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대규모 국제행사가 드문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국내 행사를 명실상부한 국제행사로 거듭나게 하는 지원을 꾸준히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컴덱스나 프랑스의 칸 국제영화제처럼 치열한 유치경쟁 없이 정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개최하는 국내 행사를 확실한 국제행사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라고 극찬한 부산국제영화제나 광주비엔날레 등은 훌륭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를 상징하는 유형 무형의 상징물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넬슨 만델라, 피라미드, 눈 덮인 후지 산, 에펠탑 등의 예를 보자. 현존 인물, 역사물, 자연물, 인공물 등 제각각 속성은 다르지만 나라 이름을 굳이 대지 않아도 해당 국가의 상징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과연 무엇인가?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아울러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이미지 홍보 전략의 수립이 절실하다. 큰 행사에만 집중하는 일회성, 전시성 홍보 전략으로는 꾸준한 국가 이미지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외홍보에 있어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APEC는 끝났는지 몰라도 국가 이미지 제고에 있어서는 APEC가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를 망각하는 한 우리의 국가 이미지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현진 KOTRA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