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펀드나 이동통신사 등을 통해 ‘개미’ 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던 영화들. 위부터 ‘웰컴 투 동막골’ ‘안녕, 형아’(이상 2005년) ‘바람난 가족’(2003년) ‘엽기적인 그녀’(2001년).
《일반인도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차츰 넓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자산운용업 규제완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자본금 10억∼20억 원 수준의 소규모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것. 이 경우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기가 쉬워져 영화사가 일반인으로부터 소규모 자금을 모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웰컴 투 동막골’에 1인당 최고 1000만 원까지 투자한 KTF 가입자 6300여 명은 흥행 성공 덕분에 원금의 2배가량을 회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미 투자자’들이 어떤 영화에 투자해야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을까. ‘바람난 가족’ ‘안녕, 형아’를 통해 일반인 투자를 유치했던 영화제작사 ‘MK픽쳐스’의 심재명 사장, 국내 양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투자1팀 정용욱 팀장과 쇼박스 한국영화팀 장광훈 차장,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의 도움을 받아 ‘수익 낼 가능성이 높은 영화 고르는 법’을 항목별로 짚어본다.》
1. 시나리오
액션, 공포, 코미디 등 장르가 분명한 영화가 좋다. 상업영화인지 작가영화인지 불분명했던 ‘남극일기’와 ‘주홍글씨’는 흥행 성적이 저조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이야기가 단순한 시나리오를 선택하라. ‘형사’는 스타도 스타일도 있었지만 정작 이야기가 불분명해서, ‘사랑니’는 섬세한 터치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 탓에 외면받은 경우다. 또 시나리오 맨 마지막의 신(scene) 수(數)가 130신을 넘어가면 경계할 것. 최종 편집 시 많은 분량을 잘라내야 하므로 이야기가 허술해질 가능성이 높다.
2. 소재
판타지는 아직까지 잘 안 통한다. 한국 관객은 리얼리티가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상상력이 빛나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박해일 주연 ‘소년, 천국에 가다’가 실패한 것도 판타지를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이는 관객 성향 때문.
3. 감정선
지나치게 ‘쿨’하거나 냉소적일 경우 유의해야 한다. 반응이 즉각적이고 솔직한 한국 관객은 휴먼 코미디를 즐기는 편.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 이후 중반까지 무지막지하게 웃겼다가 종반에 뭉클하게 울리는 패턴도 잘 통한다. ‘마파도’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가문의 위기’가 그렇다. ‘복수는 나의 것’처럼 감정선이 분명하지 않아서 웃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난감한 영화는 필패.
4. 주연배우
장동건 차승원 조승우 송강호 설경구 권상우 원빈 류승범 문근영 전지현 이영애 김선아 등은 티켓파워가 있다. 엄정화의 경우 ‘홈런’은 아닐지라도 ‘아웃’ 가능성이 낮다. 남자배우 L, B, C, H 씨와 여배우 K 씨, 또 다른 K, S 씨는 유명세에 비해 티켓파워가 허약하다. 특급스타라도 영화 홍보를 책임지는 근성을 갖고 있는지 여부도 살펴야 한다. 차승원과 김선아는 이런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
5. 감독
흥행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감독은 강제규 강우석 박찬욱 봉준호 김상진 김지운 곽재용 등. 신인 감독은 데뷔작이 ‘대박’이었더라도 두 번째 영화에선 고배를 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화려하게 데뷔한 김경형 감독은 ‘라이어’로 아쉬움을 남겼다. ‘색즉시공’ ‘두사부일체’로 성공한 윤제균 감독은 ‘낭만자객’으로, ‘몽정기’를 히트시킨 정초신 감독은 ‘남남북녀’로 쓴맛을 봤다. ‘신라의 달밤’ ‘귀신이 산다’의 김상진 감독은 대중의 눈높이와 자신의 눈높이를 일치시킨 몇 안 되는 감독.
6. 제목
짧고 주제가 함축된 제목이 통한다. ‘친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코미디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딱 잡히는 제목이 좋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가문의 위기’ ‘두사부일체’ 등. ‘말아톤’처럼 살짝 ‘비튼’ 제목도 바람직.
7. 지역성
지방 관객이 서울보다 2배 이상 되어야 큰 흥행을 기대할 수 있다. 지방에서는 ‘조폭 마누라’ ‘가문의 위기’ ‘강력 3반’ ‘미스터 소크라테스’처럼 형사물 코믹물 액션물이 잘 된다.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는 저조하다. 걸쭉한 지방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도 지방 공략에 효과적.
8. 기타
속편은 전작 흥행의 50% 정도의 어드밴티지를 갖지만 전편 이상의 대박은 쉽지 않다. 또 인터넷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처럼 지나치게 트렌디해도 위험 부담이 있다. 해외 로케이션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제작비 증가로 손익분기점이 높아져 최악의 경우 영화 제작이 중단될 수도 있다. 영화라는 상품은 제작이 중단되면 원가조차 건질 수 없으므로 관련 규약을 꼭 살펴볼 것.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