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님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합니다. 오전 5시 50분쯤이었을 겁니다. 콜카타의 캄캄한 새벽, ‘사랑의 선교회’ 본부 수도원 2층의 경당(작은 예배당)은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웠습니다. 잠시 후 수녀님들이 들어왔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테레사 수녀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굽은 등,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저렇게 작고 늙은 할머니였구나! 푸른 줄이 쳐진 하얀 면 사리 수녀복을 거쳐 테레사 수녀님의 발로 눈길이 내려갔습니다.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분을 ‘살아 있는 성자’라고 불렀는지를 아는 데는 책도 신문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갈라지고 뒤틀린 발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1994년 1월 4일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될 축복받은 날이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에서 1주일만 해 보자고 시작했던 ‘테레사 수녀의 집’에서의 생활은 제 인생을 뿌리부터 바꿔 놓았습니다. 1주일은 석 달이 되었고, 겨울이 되면 다시 콜카타로 날아가는 짓을 다섯 번이나 저질렀습니다. 다 합치면 2년쯤 되는, 그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아홉 달 동안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테레사 수녀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그분 앞에 나가 머리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제 머리에 손을 얹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God Bless You(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제 머리에 얹혔던 그분의 손에서 제 몸으로 흘러들던 그 따뜻한 온기를 기억합니다. 그렇게 받은 축복의 힘으로 또 신나게, 씩씩하게 환자들의 똥오줌과 피고름을 닦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했던 나날을 기억합니다. 세상 곳곳에서 날아와 그 황금의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기억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이 뭐라 생각하는지요? 명예와 부, 건강, 사랑, 뭐 다 좋습니다만, 저는 ‘스승을 만나는 축복’을 꼽고 싶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바로 제가 만난 스승이었습니다. 어떤 삶이 아름다운 삶인지를 보여 주신 분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타계한 뒤 콜카타에 들렀을 때 마침내 그분의 삶을 기록한 책을 샀습니다. 나빈 차울라라는 인도 사람이 쓴 책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삶이 팍팍해질 때, 사람들이 미워질 때, 나 스스로가 한심해질 때 책을 펼치곤 했습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언제나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습니다. ‘가난한 마음-마더 데레사’라는 제목으로요. 삶의 스승이 꼭 하나여야 할 필요는 물론 없습니다. 스승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삶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시나요? 사람들이, 세상이 미워지고, 스스로가 한심하게만 느껴지시나요? 이 책을 한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두 벌의 옷과 샌들 한 켤레로, 그렇게 ‘가난한 마음’으로 살았던 어느 스승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가난한 마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난한 마음을 어루만졌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에도 테레사 수녀님의 따뜻한 손이 얹어지리라고, 당신의 귀에 어떤 목소리가 들리리라고 믿습니다. 갓 블레스 유.
조병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