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용어에 ‘포크 배럴(pork barrel·돼지고기 통)’이란 말이 있다. 정치적 배려에 따라 선심성으로 특정 지역에 예산 또는 이권, 관직 등을 나눠 주는 것을 뜻한다. 남북전쟁 이전, 통에 넣어 절인 돼지고기를 노예들에게 배급해 주던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주민에게 ‘돼지고기 한 접시 돌리는 정치’쯤 되는 셈이다. 요즘도 국민 세금으로 지출하는 연방예산에서 특정 지역 사업비를 타 내려는 의원을 겨냥해 언론이 이 용어로 비판한다.
▷한국에서도 ‘돼지고기 정치’에 여야가 따로 없다. 어떻게든 자기 지역에 세금을 끌어다 쓰려는 몸부림이 ‘정치 예산’을 만든다.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예산 따낸 공(功)을 자랑하다 다투기도 한다. 특정 지역에 감투를 여럿 보내 주는 것도 ‘돼지고기 정치’다. 사실 우리는 손이 더 크다. 지역구 정도가 아니라 농민,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등 훨씬 넓은 범위에 정치적 목적으로 큰돈을 뿌리는 사례도 많다. 이쯤 되면 ‘소 잡아 잔치 벌이는 정치’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라 농산물 시장을 열게 되자 김영삼 정부는 농어촌 구조개선에 42조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김대중 정부도 45조 원을 지원했다. 농지 정리, 농기계 보급, 전업농(專業農) 전환 등 변화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농민은 소득보다 빚이 더 빨리 늘어 고생이다. 쌀은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조일현(강원 홍천-횡성) 의원이 “(정치권이) 표 되는 쪽으로 가다 보니까 42조 원을 붓고도 농업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개탄한 대로다.
▷노무현 정부도 농업과 농촌에 10년간 119조 원을 투융자하겠다고 한다. 지난 10여 년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80여조 원을 쓴 경험이 약이 될까, 어떨까. 이번엔 ‘표 되는 쪽’이 아니라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농촌 살리기 사업에 돈이 들어가야 한다. ‘돼지고기 돌리기’ 식으로는 안 된다. 그러자면 현 정부야말로 국민 세금 똑바로 쓰는 법을 지금이라도 배워야 할 텐데….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