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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자 설문]“난자 제공 자발적… 문제안돼” 41%

입력 | 2005-11-25 03:05:00


《“솔직히 최근까지 헬싱키 선언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석좌교수는 24일 ‘난자 논란’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5월 ‘네이처’ 기자에게 난자 기증 사실을 밝힌 여성 연구원도 헬싱키 선언에 대해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몰랐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은 본보가 생명공학과 관련된 4만 명의 회원을 가진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국내 과학계가 연구 윤리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리교육 “전혀 받은적 없다” 51%…“귀동냥한 정도” 28%▼

A대 생명과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J(28) 씨는 “대학원 재학 중 1년에 한 번씩 하는 실험실 안전교육 외에 연구와 관련한 윤리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그는 대학원에서 혈액의 면역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당장 필요한 혈액이 없어 급한 김에 후배의 피를 뽑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유전자 조작된 돌연변이 대장균은 괜찮다는 생각에 그냥 실험실 하수구에 버린 적도 있다고 실토했다.

실험실의 유전자 재조합 실험 지침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된 미생물은 반드시 멸균 처리해 버려야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 학계가 연구 윤리교육에 신경 쓰지 않았던 풍토에서 국제 윤리규범인 헬싱키 선언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497명)는 생명공학 실험과 관련한 윤리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며, 28%(268명)는 지도교수나 실험실 선배에게서 간단한 설명 정도만 들었다고 답했다.

황 교수팀 연구원의 난자 제공에 대해 ‘자발적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의 215명은 윤리교육 이수 경험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제도적 기준 마련 미비했던 정부 탓” 38%▼

이번 사태의 책임은 법적, 제도적 기준을 마련하는 데 소홀했던 정부에 있다고 전체 응답자의 38%(366명)가 답변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윤정로(尹淨老·사회학) 교수는 “그동안 국제 윤리에 신경을 거의 안 썼고 관련 정보에도 무지했다”며 “연구 성과를 빨리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리의 국제 기준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대 생물교육과 조은희(趙恩凞) 교수는 “기존 연구자 사이에서도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공감대나 합의가 중요하다”며 “새로 연구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윤리교육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줄기세포 연구의 총괄 책임자인 황 교수에게 책임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3%(323명)였다.

▼“생명공학 분야 윤리교육 중요성 알리는 계기돼야”▼

이번 설문조사 결과 나타난 시사점은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인력에 대한 윤리교육이 부족했고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대 학생은 헬싱키 선언을 비롯한 생명윤리 관련 과목을 반드시 배워야 하지만, 생명공학 분야가 속한 자연대나 수의대는 이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된다. 교양과목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생명윤리를 한 번도 접하지 않을 수도 있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임종식(林鍾植) 대우교수는 “국내 과학기술 분야의 윤리교육은 외국에 비해 매우 늦다”고 지적했다.

그는 KAIST와 서울대에서 ‘과학기술과 윤리’ ‘생명의료윤리’ ‘응용윤리학’ 등을 교양과목으로 강의하고 있다. 강의에는 복제한 배아가 생명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과 난자를 기증받을 때의 조건 등도 포함돼 있다.

요즘은 의사가 아니면서 생명 현상을 다루는 연구자가 많다. 생명윤리가 비단 의사에게만 적용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이런 윤리 규정 자체를 몰랐던 황 교수팀을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다.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구영모(具榮謨) 교수는 “의사가 아니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자라면 헬싱키 선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며 “이번 일이 국내 생명과학계에 윤리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cosmos@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sohyung@donga.com

“생명윤리 헬싱키선언 잘 몰라” 85%

국내 생명공학 연구자 10명 중 8명은 1964년 제정된 국제 생명윤리 규범인 ‘헬싱키 선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명 중 1명은 생명공학 실험과 관련한 윤리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본보가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산하 과학분야 설문조사기관인 ‘사이온(SciON)’에 의뢰해 23, 24일 이틀 동안 실시한 생명공학 연구자의 윤리의식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설문조사에는 대학, 정부 출연 연구소, 병원, 벤처기업에서 생명공학 분야를 연구하는 969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응답자의 46%(443명)는 헬싱키 선언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으며 39%(376명)는 들은 적은 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서울대 수의대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윤리 문제를 조사했던 기관 윤리심의위원회의 존재에 대해서도 42%(404명)는 모른다고 응답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