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발련)의 공동대표 의장인 유재천 한림대 특임교수는 “현재 공영방송의 가장 큰 위기는 공정성의 상실”이라고 지적하면서 “공발련은 공영방송의 편파성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비판할 수 있도록 정파성을 띠는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공영방송은 무엇보다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가진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발련)의 공동대표 의장 유재천(劉載天·67) 한림대 특임교수. 그는 총회 직후의 인터뷰에서 이 단순한 명제를 몇 번이고 반복해 강조했다. “현재 공영방송의 위기는 수입 감소가 아니라 공정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겁니다. 공영방송은 권력, 이념, 자본, 특정 사회집단의 이익 그 무엇으로부터도 독립해 전체 국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의 공영방송은 어떻습니까? 개혁을 내세워 일방적 관점만 주입하고 편파 방송을 사회정의 구현이라 주장하며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25일 출범한 공발련은 지난해 11월 몇몇 언론학자가 모여 “공영방송이 더는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나누며 구체화됐다. 그러나 실제 계기는 지난해 6월 언론학회가 각 방송사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사태 관련 방송을 분석한 뒤 낸 보고서. 당시 보고서는 “탄핵방송이 균형 있는 의견 제시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공정성에 문제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수개월에 걸친 연구를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한마디로 부정하는 태도를 보고 문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 창립 세미나에서 윤영철 연세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적어도 보고서가 지적한 탄핵방송의 불공정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체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공표했어야죠.”
유 교수는 특히 당시 방송사들이 “우리는 공정했다”며 반론의 근거로 들이댔던 ‘시대정신’이라는 대목에서 위험성마저 느꼈다고 했다.
“당시 언급됐던 ‘시대정신’은 결코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정신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죠. 권위주의의 특징은 ‘진리가 우리에게 있고 이를 국민이 따라와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만약 방송이 시대정신을 내세우며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건 공영방송이 아니라 국영 내지는 공산주의 방송이나 다름없죠. 국민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을수록 이를 충실히 반영해야 합니다.”
그는 공발련이 문제 삼는 공영방송의 편향성이 ‘어느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어느 쪽이냐가 아니라 편향됐다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현재의 문제는 집권세력 이데올로기로의 편향이지만 만약 공영방송이 집권세력과 반대되는 이데올로기에 기울었다 해도 비판해야 마땅합니다.”
공발련은 발기인에서 전현직 방송인이나 정치인을 배제했다. 공영방송의 정파성을 비판하려면 공발련도 스스로 정파성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활동을 하며 주장과 투쟁은 지양할 겁니다. 구체적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드러난 문제점을 이렇게 고치자는 학문적 접근을 우선하려고 합니다.”
그는 공발련 조직을 개방형으로 꾸려 나갈 생각이다. 발기인은 신중하게 골랐지만 창립 후에는 공발련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할 계획. 서울YMCA나 여성민우회 등 방송 모니터를 해 온 시민단체와도 연대하고 전국네트워크를 구성해 범시민운동으로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매년 공영방송 백서를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립성이나 수신료 등 심각한 주제 외에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 방송 언어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제를 함께 다룹니다. 예를 들어 BBC와 비교하면 우리의 공영방송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너무 소홀히 취급해요. 호주의 ‘어린이 방송법’과 같은 법안을 입법청원하는 등 방송의 질을 올리는 데 신경 쓸 계획입니다.”
현재 공영방송의 맏형인 KBS가 주장하고 있는 수신료 인상과 간접광고의 허용에 대해서 유 교수는 “KBS 자신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18년째 2500원으로 동결된 수신료로는 공영방송을 위한 재원 마련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을 통한 재원 확보는 KBS 자신에 달려 있습니다. KBS가 공정성을 유지하고 국민의 교양 수준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양산할 때 국민이 흔쾌히 받아들일 겁니다. 또 내부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인력이 제대로 활용되는지, 제작 시 낭비요인은 없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유재천 ‘공발련’ 공동대표 의장은
△1938년 함남 영흥 출생 △1961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73년 미국 미네소타대 석사 △2002년 강원대 사회학과 명예박사
△1974∼97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989년 한국언론학회 회장
△1993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1997년∼현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특임교수
△2001년 한림대 부총장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