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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병후]얼굴수술보다 마음수술이 먼저

입력 | 2005-11-26 03:01:00


믿기 어려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진위를 가리는 한 TV프로그램에 23번이나 성형을 했다고 주장하는 남성 출연자가 최근 등장했다. 그는 코 성형 5회와 쌍꺼풀 수술 2회를 포함해 무려 23회에 걸쳐 수술대에 오른 ‘진짜’라고 한다. 수술을 통해 자신감이 향상됐다고 하니 다행스럽지만 그가 자신의 얼굴에서 ‘부족한’ 어딘가를 또 찾아내 새로운 성형수술을 고려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요즘은 남성들에게도 외모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편협한 외모 기준 때문에 고통 받은 역사는 여성들에게 훨씬 길다.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는 여고생의 경우 키 165cm 이상에 단정한 용모를 갖춰야만 우선적으로 취업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고 있지만 능력보다는 외모에 대한 평가가 앞선다. 얼마 전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응답한 우리나라 여성의 비율은 1%뿐이었다. 또한 43%의 여성이 스스로를 너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10명 중 8명 이상이 30세 이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수치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99%의 여성이 외모에 자신감을 잃고 있고, 절반에 가까운 여성이 너무 뚱뚱한 것이며, 10명 중 8명은 서른이 넘으면 가장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미모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은 여성을 차가운 메스 아래로 이끌어 ‘한국=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도록 한다. 아시아 여성 가운데 한국 여성이 가장 높은 비율로 성형수술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성형수술에 의존하는 여성은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마음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손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성형수술을 선택하고 있지만 성형수술을 경험한 여성의 80%가 성형수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

많은 여성에게 유쾌하지 못한 이러한 현상들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이 생물학적 가임기의 여성에게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중시됐던 과거 사회에서는 여성의 가임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패러다임이 변화했으며 자손의 번식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닌 세상이 됐다. 가치관의 변화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발생하는 여성 외모에 관한 ‘닫힌 사고’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근본 원인이 되는 명제를 바꾸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름다움을 나이와 신체조건 등 획일화된 기준 아래 한정하지 말고 더욱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은 물론 남성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이해와 동의가 있어야만 이뤄질 수 있다. 또한 여성 스스로도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96세의 여성이 광고모델로 등장해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주름의 매력을 맘껏 표현한 사례가 있었다. 가임기의 여성만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기준이라면 그를 미인으로 볼 수 없겠지만 그 광고를 접한 사람들 대부분은 우아하고 기품 있는 나이 든 여성에 대해 아름답다고 반응했다. 종종 정형적인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매력이 있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성숙하거나, 강인하거나, 지성적이거나, 헌신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정신적 가치는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 아름다움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기억하라. 당신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김병후 정신과 전문의·행복가정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