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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승헌]“내용 잘 몰라”…한심한‘묻지마 발의’

입력 | 2005-11-26 03:02:00


정부 여당은 최근 비공개로 만나 8·31 부동산 종합대책의 핵심 중 하나인 기반시설부담금 부과 대상을 줄이기로 했다.

당초 60평 이상 모든 건축물의 신증축에 부담금을 매기려 했으나 증축일 때는 이전 건물 면적은 부과 대상에서 빼주겠다는 것이다. 땅도 용도별로 구분해 상업지역처럼 이미 기반시설이 갖춰진 곳은 부담금을 낮추기로 했다.

재건축조합과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과다 징수 논란이 거센 데다 정부 여당도 이런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단 국민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대응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사정을 따져 보면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부동산대책처럼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사전 검토를 충분히 하고 추진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그걸 제대로 못해 졸속 행정과 무책임 입법이란 비판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는 8·31대책 발표 전까지 기반시설부담금에 반대하는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을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그 대신 “미국에도 개발영향부담금(development impact fee)이라는 제도가 있는 만큼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만 앞세웠다.

그러면서 미국의 개발영향부담금제가 도로의 교통량까지 세분해서 부담금을 정교하게 매긴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정부가 엉성하게 만들어 준 법안을 검토도 없이 발의한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법안 발의에 참여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여당 A 의원은 최근 기자에게 “사실 법안 내용을 잘 모른다. 공부한 뒤 얘기하자”고 꽁무니를 뺐다.

역시 발의에 참여한 B 의원은 국회에 법안이 상정된 뒤 열린 건교위 회의에서 “지금 보니까 이 법안에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많다”며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비판하기도 했다.

‘헌법만큼 바꾸기 어려운’ 정책을 내놓겠다면서 정작 법안은 이처럼 성의 없이 만들어졌다. 정부나 열린우리당 역시 정교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쫓기기라도 하듯 ‘묻지마 법안’을 만들었다.

이미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8·31대책 관련 법안 가운데도 이런 졸속 법안이 또 있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이승헌 경제부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