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는 소전체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설문해자’에서는 새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중심선은 몸체를, 아래는 양쪽으로 펼쳐진 새의 깃을, 윗부분은 머리와 새털을 형상화해, 하늘을 향해 세차게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을 잘 그렸다.
이후 새는 물론 蟲飛(충비), 飛雲(비운), 飛煙(비연) 등과 같이 곤충, 구름, 연기 등이 날아오르는 것도 지칭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飛閣(비각·높은 전각)에서처럼 날아오를 듯 ‘높게’ 지어진 건물을, 飛報(비보·급한 통지)처럼 날아갈 듯 ‘빠른’ 모습을 뜻하기도 했다. 또 飛廉(비렴)은 고대 중국에서 바람을 관장하던 신을 말했는데, 이것을 우리말 ‘바람’의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飛가 세차게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말한다면, 翔(빙빙 돌아 날 상)은 날갯짓(羽·우)을 하며 이리저리 빙빙 도는 것을 말하는데, 소리부로 쓰인 羊을 ‘석명’에서 사람이 이리저리 배회하다는 뜻의 佯(헤맬 양)과 같은 것으로 풀이했다. 또 蜚(바퀴 비)는 원래 곤충((충,훼)·충)이 날아오르는(非·비, 飛의 아랫부분) 것을 말했지만 종종 飛와 같이 쓰인다.
飛로 구성된 글자들은 많지 않은데, Z(빠른 말 비)는 날아가듯(飛) 빨리 달리는 말(馬·마)을, [飛(빙 돌아 날 환)은 일정한 범위 내를 둥글게([·경) 빙빙 돌아 나는(飛) 것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번(飜·날 번)은 날갯짓을 하며 나는(飛) 새를 그렸고, 의미를 더 명확하기 위해 飛대신 羽를 더하기도 했다. 소리부로 쓰인 番(갈마들 번)은 원래 들(田·전)에 난 짐승이나 새의 발자국을 그려, 그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 분별한다는 뜻을 가진다. 날던 새가 먹이를 잡기 위해 갑자기 몸을 뒤집는 모습에서 번에는 ‘뒤집다’는 뜻이 나왔다.
그래서 飜譯(번역)의 飜은 새가 몸을 뒤집듯 다른 언어로 ‘바꾸다’는 뜻이요, 譯은 대응 ‘어휘(言·언)’를 ‘섬세하게 살펴(역·역)’ 선택한다는 뜻이다. 한 언어를 또 다른 언어로 풀어내는 飜譯은 이처럼 대단히 섬세한 선택이 요구되는 至難(지난)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