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술은 몸의 조직과 오장육부가 하는 일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침의 자극을 통해 몸을 균형상태로 되돌려주는 작용을 한다. 사진은 경락과 침술의 효능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사진 제공 GAMMA
한때 통증을 치료하는 근육 내 자극치료(IMS)를 둘러싸고 양·한방에서 서로 ‘영역 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양쪽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침으로 하는 치료였으나 현대의학에서 그것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침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침술의 효과를 인정할 정도다.
현대의학에서는 침술에 대해 신경학적 접근법을 쓴다. 침이 신경을 자극하면 뇌로 그 자극이 전달돼 엔도르핀 등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기와 혈의 통로인 경락을 자극해 뚫어줌으로써 질병을 고친다고 해석한다. 원리에 대한 이해는 양·한방이 서로 다르지만 효과를 인정하는 점은 일치한다.
○ 침의 효과 / 30분 정도 경락 자극해 기 흐름 뚫어줘
한두 번 침을 맞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선전한다면 믿지 말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기적의 치료법은 없다.
한의학에서는 침의 효과를 물의 흐름에 비유한다. 한두 번 물길을 텄다고 맑아지지 않는 것처럼 기(氣)를 틔우려면 최소 3회는 침을 맞아야 한다. 질병에 따라 15∼20회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침을 맞는 빈도는 보통 2, 3일 간격이 좋다.
일부 침법을 제외하면 대부분 30분 정도 침을 꽂은 채로 둔다. 기가 인체를 순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이기 때문. 침 자극을 주면 아세틸콜린이란 신경전달물질이 15분 이후 분비되며 30분에 멈추기 때문에 현대의학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속이 더부룩할 때 손끝을 따면 시꺼먼 피가 나오면서 속이 좋아진다. 시꺼먼 피는 산소 공급이 떨어져 탁해진 것이고 따라서 그런 피를 빼면 막힌 기가 뚫린다는 게 한의학적 해석이다.
○ 침의 궁금증 / 수술 출산 등 피 많이 흘렸을 땐 금물
침을 맞은 뒤 바로 목욕을 하면 안 된다. 침을 맞은 뒤 기운이 빠지거나 그 부위에 감염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 2시간은 있다가 목욕하자.
치료를 끝내고 침을 빼면 피가 나올 때가 있다. 나쁜 피가 빠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침에 의해 모세혈관이 다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한의사의 실수라고 보면 된다. 큰 부작용은 없다.
침은 신경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혹시 신경이 다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구나 침을 맞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의학 문헌에 따르면 술을 마신 뒤나 심하게 땀을 흘리고 설사를 한 뒤, 갈증이나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 과로 과식 금식 후, 성관계 전후에는 침 치료를 권하지 않고 있다. 극도로 쇠약하거나 외과적인 수술, 출산으로 인해 피를 많이 흘렸을 때도 침은 금지사항이다.
○ 침의 진화 / 약침 전침 향침 등 업그레이드 추세
보통 ‘침’ 하면 몸에 놓는 체침(體鍼)을 떠올린다. 이처럼 침을 놓는 부위에 따라 족침(足鍼), 수지침(手指鍼), 두침(頭鍼), 이침(耳鍼)으로 분류된다.
최근 전통 방식을 업그레이드한 침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게 약침(藥鍼)이다. 약물을 넣은 침으로 생김새나 치료 방법이 주사와 비슷하다. 빨리 약효가 나타나는 반면 일반 침보다 자극이 심해 피멍이 들기도 한다.
전침(電鍼)요법은 침에 전류를 흘려 자극을 주는 방식. 전기를 사용해 자극의 강약 조절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레이저를 사용하는 광침(光鍼)은 침을 삽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통증이 없다.
향침(香鍼)요법도 등장했다. 아로마 오일을 침에 입힌 것으로 안면마비나 두통 치료에 주로 쓰인다. 얼굴에 침을 놓으면 향기가 코를 자극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다. 원적외선이 나오는 세라믹침도 곧 나올 전망이다.
(도움말=경희대 한방병원 침구과 이재동 교수, 일침한의원 백승일 원장)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침의 유래▼
침은 기원전 3000년부터 질병 치료에 활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의학의 원전으로 불리는 ‘황제내경’에는 인체의 생리와 병리현상, 진단과 치료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 중 침과 관련된 것은 ‘폄석 치료’. 폄석이란 뾰족한 돌을 말하는데 이를 이용해 인체에 물리적인 자극을 가하면서 질병 치료에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인간이 침술에 어섯눈을 뜬 것은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추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