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대학에서 근무하다 최근 지방대로 옮긴 A 교수는 직함이 많다. 그는 학회와 협회 4곳에서 회장 또는 부회장 직을 맡고 있다. 대통령자문위원회를 포함해 2개의 정부 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사회 스타’인 A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2주일에 한 번쯤은 아무 말도 없이 휴강을 하기 때문. 그의 별명은 ‘밑줄 쫙∼’. A 교수는 수업 시간의 절반가량을 자신이 지은 책을 그대로 읽으면서 중요한 대목에 밑줄을 치라는 교육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의 기말고사 문제는 몇 년째 비슷하다. 학생들에게 기말고사를 대신해 자신이 소속한 단체의 행사 참관기를 쓰도록 한 적도 있다.
서울대 B 교수는 대학원 수업시간에 주로 학생들에게 발제를 맡기는데 자신이 정한 교재의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는 지난 학기 기말고사 대신 원서를 번역해 오도록 했다. 그는 이 원서의 번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많은 대학이 ‘평가와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등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편에선 변화를 거부하는 소수의 이른바 ‘농땡이 교수’들이 남아 있다. 평가는 있지만 ‘신상필벌’이 없는 탓이다. 》
“일주일에 딱 하루 학교에 나오는 교수들이 있다”는 서울대 정운찬(鄭雲燦) 총장의 발언을 계기로 본보는 ‘놀고먹는’ 교수들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조정열(趙正烈) 교수팀에 의뢰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4, 25일 전국 103개 대학생 5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2.1%인 328명이 정 총장 발언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0명(94.7%)의 대학생이 거의 모든 강의가 한 번 이상 휴강을 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296명(56.1%)은 보충강의(보강)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학교 행사(179명, 33.9%) 등 공적인 이유보다 교수 개인 사정(310명, 58.7%)으로 인한 휴강이 훨씬 많았다.
특정 교수 때문에 수강을 포기했거나 기피한 적이 있는 학생도 269명(50.9%)으로 절반이 넘었다. 46%(243명)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수와 면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강의 등 교수 본연의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지만 교수들의 대외활동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지난해 17대 총선 때 출마한 교육자(대부분이 교수)는 103명으로 16대 총선(55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88개 정부 위원회의 위원 1282명 가운데 현직 교수는 40%에 이르는 508명이다.
서울대 교수 200여 명은 벤처기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0명은 벤처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교수도 50명이나 된다. 지난해 학기 중 외유 규정(20일)을 넘겨 외국에서 체류한 교수도 40명에 이른다.
무단 휴강이나 느슨한 강의 등이 좀처럼 용인되지 않는 선진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일들이 이른바 일류 대학에서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