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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입력 | 2005-11-30 03:01:00


삼겹살과 고스톱이 주를 이루던 우리의 여가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책(1993년 첫 출간), 그래서 국어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이(한반도)가 좁기만 할 뿐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생각이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며 실제로 자신이 국토 박물관의 길눈이 역할을 해 보이겠다고 합니다. 그가 경주나 부여처럼 찬란한 문화유산이 많은 왕도를 뒤로하고 해남과 강진에서 답사를 시작한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저자의 발길과 시선이 닿을 때마다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친 국토의 많은 것들이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바뀌곤 합니다. 여기저기 널려 있어, 하나도 신기할 것 없는 절 마당은 저마다의 특징과 자태를 숨기고 있고, 그저 산이고 물일 뿐이었던 것들 속에 선인들의 손길과 자취가 담겨 있다는 데에 이르면 우리의 안목이 마냥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이 책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식이 부족할 때 이 나무는 저 나무 같고 이 절은 저 절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먹고 다짐을 해도 박물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겹고 괴로운 까닭도 이 때문일 겁니다. 아는 것이 없다 보니 보이는 것이 없고 재미와 감동이 없는 박물관이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안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의 시각과 관점을 좌우합니다. 1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에밀레종소리를 현대과학이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22t이나 되는 종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지름 8.5cm의 종고리 하나를 이 시대의 기술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마도 우리의 문화유산과 조상의 슬기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첨성대에 담긴 구조와 상징성을, 그리고 석굴암에 새겨진 신라인의 과학과 기술을 알게 된다면 그 후손인 우리들 자신을 보는 눈마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이 책이 지나간 유물과 유적만을 다루었으리라 추측했다면 순전히 오해입니다. 답사란 ‘인간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옛날의 영광과 상처를 되새기고 나아가서 오늘의 나를 되물으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 땅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니까요. 안동 사람들에게 제사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간고등어 하나에 담긴 그들의 자존심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안동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은이가 땅에 얽힌 시와 소설을 이야기하고 그 땅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을 통해 기쁨과 슬픔으로 얼룩진 땅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까닭입니다.

이 책이 도달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를 둘러싼 우리를 알고, 현재를 이룬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내다보자는 생각입니다. 국어가 말을 통해 우리의 삶을 가늠하려 하고, 국사가 수많은 사건을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를 이해하려 한다면 이 땅(국토)에 서린 선인들의 숨결과 자취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는 일, 그것은 바로 나를 찾는 일이라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습니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