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씨
80대 여성 성악가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기모노를 입고 피아노 옆에 선 그의 노래 ‘하바네라’에서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요염함마저 뿜어져 나온다.
11월 중순, 동아일보사 사장 앞으로 소포 하나가 우송돼 왔다. 내용물은 비디오테이프 한 개와 편지 한 장. 보낸 이는 야나기 무네미치(柳宗理) 일본민예관 관장이다.
“이번에 저희는 다큐멘터리 영화 ‘가네코(兼子)’를 제작했습니다. 가네코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처(妻)이자 저희 3형제의 어머니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 조선의 민예에 반해 조선민족미술관 건립운동을 벌이고 ‘조선과 그 예술’ 등의 저서를 남긴 일본의 민예연구가다. 192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광화문을 철거하려 하자 보존운동을 벌인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30년대 야나기 집안의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야나기 무네요시, 어머니 가쓰코, 아내 가네코. 앞줄 왼쪽부터 장남 무네미치, 막내 무네타미, 차남 무네모토. 비디오의 주인공은 그 무네요시의 부인 야나기 가네코(柳兼子·1892∼1984)였다. 그는 18세부터 87세까지 현역 성악가(알토)로 활동했고 1984년 6월 92세로 세상을 뜨기 2개월 전까지도 제자들을 지도했다. 무네요시와의 슬하에 둔 세 아들 무네미치, 무네모토(宗玄), 무네타미(宗民)는 각기 산업디자이너, 미술사가, 원예가로 성장했다.
영화는 가네코가 주로 80대에 공연에서 부른 노래와 그에 대한 20여 명의 회고담, 사진과 필름 기록물로 구성돼 있다. 그의 열혈 팬이던 한 택시회사 사장이 30여 년간 보관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칸영화제 단편영화 그랑프리를 수상한 시부야 노부코(澁谷昶子) 감독이 지난해 3월 완성했다. 이후 일본 전국의 여성회관 등 50여 곳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에는 이 부부가 생전에 동아일보와 가졌던 인연도 수록돼 있다. 조선민족미술관 건립을 위해 노력하던 무네요시가 1921년 6월 3일 동아일보 주최로 서울 종로구 YMCA에서 ‘민족과 예술의 관계’라는 강연회를 열었고 이튿날에는 서울 종로구 천도교회관에서 아내 가네코를 내세운 ‘조선민족 미술관 설립모금 독창회’를 개최한 내용이 소개된 것.
시부야 감독은 “가네코 여사는 생전에 늘 한국에서 다시 공연을 하고 싶어했다”며 “혹 한국에 가네코의 노래를 즐길 만한 귀 밝은 분이 있다면 자비로라도 상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 유족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