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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5-12-01 03:00:00

그림 박순철


관영이 밤낮없이 달려 영하(영下)에 이르자 이번에는 전횡이 크게 낭패를 당했다. 겨우 전날 저녁 영하로 돌아와 진채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는데, 기마대를 앞세운 한군의 매서운 추격을 받게 되니 그 혼란은 며칠 전의 관영보다 더했다. 달포 가까이 머물렀던 인연을 다져 영하를 당분간의 근거지로 삼으려던 꿈은 허사로 돌아가고, 전횡은 다시 얼마 안 되는 군사와 더불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관영이 그런 전횡을 곱게 놓아 보내지 않고 맹렬하게 뒤쫓았다. 그 바람에 산동에서 배겨내지 못한 전횡은 마침내 양(梁) 땅으로 달아났다.

“팽월에게나 의지하자. 형님(田榮)의 낯을 보아서라도 우리를 괄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횡이 그렇게 부하 장졸을 달래면서 찾아가자 팽월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옛정으로 보아서는 당연한 일 같기도 했다.

3년 전인 한(漢) 원년(元年) 6월의 일이었다. 팽월은 만여 명이나 되는 무리와 더불어 거야택(巨野澤)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패왕 항우를 따라 관중으로 가지 않은 까닭에 봉토(奉土) 한 조각 얻지 못하고 누구 밑에도 들지 않은 채(無所屬) 지냈다. 그때 역시 패왕에게 무시당하고 있던 전영이 스스로 제왕이 되어 팽월에게 장군인(將軍印)을 내리고 불렀다.

팽월은 두 말 없이 전영의 부름을 받아들이고 그 장수가 되어 명을 받들었다. 그해 7월 제북(齊北)을 치고 항우가 그곳 왕으로 세운 전안(田安)을 죽였으며, 다시 초나라로 쳐들어가 그 북쪽을 어지럽혔다. 이에 패왕이 소공(蕭公) 각(角)에게 대군을 주며 팽월을 치게 하였으나, 팽월이 오히려 소공 각을 크게 쳐부수어 패왕의 부아를 건드렸다. 전영의 아우 되는 전횡이 팽월과 친교를 맺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관영에게 쫓겨온 전횡을 팽월이 그처럼 받아들인 것이 다만 옛정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 팽월은 엄연히 한왕 유방을 따르고 있었으며, 그 명에 따라 위(魏)나라 상국으로서 양(梁) 땅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한왕이 보낸 한신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가 쫓겨온 전횡을 태연히 받아들인 것은 아무래도 달리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팽월이 적지 않은 세력을 거느리고도 봉토도 없이 외톨이로 떠다니게 된 것은 수적(水賊) 떼의 우두머리로 늙으면서 몸에 밴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거야택 한 구석에서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살던 그에게 땅과 봉록을 받고 누구 밑에 드는 일이 탐탁스러울 리 없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며 외톨이로는 버텨 낼 수 없어 남의 밑에 들게 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어 하는 겉치레요 시늉일 뿐이었다.

따라서 팽월은 설령 누구에게서 관작을 받아도 언제나 자신을 따르는 무리만 이끌고 홀로 떠돌며 싸웠고, 그래서 이내 제 주군(主君)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관영에게 쫓긴 전횡이 그를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한왕을 받들 때였으나, 팽월은 별로 한왕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치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또 다른 세력처럼 전횡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왕이 된 전횡마저 양(梁) 땅으로 달아나자 제나라는 모두 평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대(代) 조(趙) 연(燕)에 이어 제나라까지 한신에게 떨어지자, 그 주군인 한왕 유방은 땅만으로 보면 천하의 셋 가운데 둘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줄곧 패왕에게 유리하던 대세가 비로소 한왕 쪽으로 뒤집힌 셈이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