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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강원용]난치병 치유도 ‘생명윤리’다

입력 | 2005-12-01 03:01:00


이 글은 내 생애 중 내 스스로 신문사에 글을 쓰게 해 달라고 요청해서 처음 쓰는 글이다. 요즘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관해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특히 지난달 29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열렸는데, 위원 21명 중 7명이 종교 윤리학계 인사라고 한다. 이 문제가 제기된 후 특히 기독교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존엄’이란 가치관에 따라 거센 비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른바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뭔가 주장을 해야 할 심각한 책임감을 느꼈다.

기독교 윤리는 석판에 새긴 글처럼 변할 수 없는 고정된 도그마가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슈바이처 박사가 윤리의 규범을 ‘생명의 외경’에 두었으나 신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다. 그 후 전쟁과 생태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전 세계 종교인 6000여 명이 모여 ‘지구윤리(Global Ethics)’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말하자면 윤리의 주제가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명 중심주의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파리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의 가치가 같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약 36억 년 전 생겼다는 ‘온 생명(On Life·지구상에 최초로 탄생한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과 관계되고, 생물뿐 아니라 태양, 물, 공기 같은 생태계와도 공생(共生)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윤리는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가 말한 선과 악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선인 경우도 더 큰 선이 있고, 악인 경우도 더욱더 큰 악과 더 작은 악(Lesser Evil)이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선이 아니다. 그러나 환자를 위한 의사의 거짓말이나 적군에 사로잡힌 자가 조국을 위해 하는 거짓말은 악이라 할 수 없다. 히틀러의 폭정에 의해 수많은 사람, 특히 유대인들이 죽어갈 때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발각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가 죽은 후 누구도 그를 살인음모자라고, 죄를 지었다고 욕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나쁘지만 포악한 적이 침략해 올 때 전쟁에 참가하여 침략자를 물리치는 것은 죄라고 볼 수 없다.

나는 이런 시각에서 이번 ‘난자’ 논쟁을 본다. ‘난자’ 논쟁이 생명을 아끼려는 데서 제기된 윤리문제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덩어리의 생명을 존중하는 일과, 난치병으로 골수에 사무치는 슬픔과 고통을 겪고 절망 상태에 빠져 있는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치유하고 돕는 일,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인가. ‘거짓말’ 문제도 어떤 상황에나 똑같게 적용할 수 없다. 한국의 문화 풍토에서 난자 제공자의 요청에 따라 그 비밀을 지켜 주는 것이 당연히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2, 3년 사이에 일어난 동남아시아의 지진해일(쓰나미),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파키스탄의 지진 등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한 죽음이 그저 천재(天災)일 뿐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사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20대 자살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세계 종교, 아니 한국의 종교가 죽어가는 생명을 위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장해 왔고 행동해 왔는지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한다. 감상적인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라, 오만한 미국 언론까지 2005년에 일어난 의학 최대 뉴스에 황 교수 사건을 꼽는 이때, 우리는 그를 격려하고 적극적으로 도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그의 연구에 지장이 없게 해주는 것이 생명을 위한 윤리를 실천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를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수백 명이 난자 제공을 한 일은 매우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황 교수를 사랑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의 일을 방해하는 일인 줄 알고 삼가야 한다. 그리고 아픔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황 교수가 연구실을 오래 비우는 것 또한 잘못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원용 목사·(사)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