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있던 것이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을 새롭게,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재미가 ‘아는 맛’이다. 저자가 바로 곁에서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읽는 맛’이다. 그런 두 가지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다.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22명인데 오른쪽 위의 중년 사나이를 보세요. 입을 헤 벌리고 재미있게 보고 있죠? 재미있으니까 윗몸이 쏠렸죠? 그 옆 장가든 친구는 씨름판에 오자마자 팔베개를 했군요. 씨름판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얘기죠. 왼쪽 관람객 중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는 갓도 삐딱하게 쓰고. 하여간 성격도 소심하고 영 시원치 않죠?’
단원 김홍도의 ‘씨름’을 설명하는 저자의 남다른 입심이다. 이 책은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강연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독자는 믿음직한 개인 교사를 한 사람 곁에 두게 된다. 단원의 ‘씨름’에서 오른쪽 맨 아래쪽에 뒤로 자빠질 듯한 자세로 등장하는 구경꾼의 두 손은 거꾸로 붙어 있다. ‘보는 사람들 재미있으라고 장난을 친 것입니다. 속았지 메롱! 하고 즐거워하는 화가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옛 그림을 꼼꼼하게 읽어내고 독창적이면서 깊이 있게 해석해내는 저자의 안목은 탁월하다. 그 탁월한 안목은 우리 전통 문화를 즐겁고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옛 초상화가 렘브란트의 작품 못지않은 세계적 수준이라는 설명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얼굴에 핀 검버섯, 수염 한 올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하는 우리 옛 초상화는 비록 모습이 추하더라도 참된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정신을 반영한다. 모든 것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형식은 조선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문화 수용자가 많아지는 것이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기본 조건이라고 볼 때, 이 책이 옛 그림 보는 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마침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감상에 적당한 그림과의 거리는 그림 대각선 길이의 1∼1.5배다. 옛 사람들이 왼쪽으로 써나가는 세로쓰기를 했고 그림의 흐름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했기 때문에, 감상자의 시선도 그 방향을 따르는 게 좋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 몇 점을 골라 잘 보고 찬찬히 나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 기획자, 미술사학자, 그리고 우리 옛 미술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쓴 탁월한 저술가이자 강연자였던 저자는 올해 2월 5일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옛말을 좋아하면서, ‘감상은 영혼의 떨림을 느끼는 행위인 만큼 마음 비우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던 그의 빈자리가 커 보인다.
벌써 1주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옛 시조대로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젊은 세대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즐기기 바라는 뜻에서 저자는 이 책을 ‘붉은 악마’에게 헌정했으니, ‘열아홉 살의 필독서’가 되었다는 사실에 고인도 기꺼워하지 않을까.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