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할리우드적 문법과 ‘왕따’라는 한국적 소재가 결합된 영화 ‘6월의 일기’. 사진 제공 포미커뮤니케이션
말하자면, 영화 ‘6월의 일기’는 스릴러라는 할리우드적 문법과 ‘왕따’라는 한국적 소재가 인공수정을 통해 만난 수정란처럼 보인다. 이들의 결합은 그리 잘못된 만남으로 보이진 않지만, 문제는 그리 운명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강력계 베테랑 여형사 자영(신은경)과 폼 잡기 위해 형사가 된 동욱(문정혁). 이들은 두 고교생 살인사건을 맡는다. 한 고교생은 육교에서 난자당했고, 다른 한 고교생은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시신에선 모두 의문의 일기 쪽지가 발견되고, 두 형사는 일기의 내용에 따라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사건을 추적하던 자영은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윤희(김윤진)와 마주치는데….
1일 개봉한 이 영화의 초반부는 관객의 ‘머리’를 자극한다. 상반된 개성의 두 파트너가 티격태격하고 사건이 점점 미궁에 빠지는 할리우드 버디 형사물의 공식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영화는 지능게임을 제안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터 안색을 바꿔 관객의 ‘가슴’에 호소하기로 한다. 사건 회오리의 중심에는 ‘왕따’라는 학교 내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단도직입적으로 ‘까 보이는’ 이 영화는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복수를 눈물겨운 모정(母情)의 드라마로 풀어내려 한다.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을 포기하면서까지 범인을 미리 밝힌 것도, 이 영화가 범인의 정체보다는 살인의 이유에 초점을 두면서 공감의 폭을 키워나가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듯하다.
이런 핑크빛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정작 ‘왕따’란 회심의 승부수가 띄워지는 바로 그 지점부터 결정적으로 김이 빠진다. 이는 사회적 이슈였던 ‘왕따’를 소재로 삼은 행위 자체로 영화적 파괴력과 설득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은, 달콤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총체적인 아이디어의 부실을 안고 있는 쪽에 가깝다.
‘6월의 일기’는 신문 사회면이나 TV 심층추적 프로그램에서 익히 접해 오던 ‘왕따’의 이미지들을 표피적으로 옮겨놓는 데 그칠 뿐, 이를 등장인물의 극히 사적(私的)인 층위로 끌어내려 구체화하는 작업에선 손을 놓는다. 영화가 ‘담론’의 수준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안 일기의 문구대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기본 설정이 가진 ‘게임’의 짜릿함마저 부식되는 것이다.
영화가 복선의 장치를 교묘하게 숨겨두기보다는 사건을 일단 터뜨린 뒤 곧이어 황급하게 플래시백(과거회상)을 갖다 붙이는 ‘사후약방문’식 구조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설명과 설득보단 ‘웅변’을 선택한 이 영화의 출발점과 무관하지 않다. 김윤진의 연기와 표정이 가슴 절절하고 눈물겹지만 어딘지 과잉으로 다가오는 것도 같은 이유. 이 영화로 스크린에서 첫 주연을 맡은 문정혁(에릭)은 비교적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지만 관성적인 캐릭터와 대사는 그를 필요 이상 규격화해 버렸다.
‘6월의 일기’는 관객이 익히 아는 것과 영화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준다. ‘도둑맞곤 못살아’의 임경수 감독 연출.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