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는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 모범적인 지도자도 열광적인 지지자들에게 등을 떠밀려 하마터면 시장 임기를 연장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할 뻔했다. 사진은 줄리아니 시장과 9·11테러 장면을 합성한 것.
◇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진 립먼-블루먼 지음·정명진 옮김/464쪽·1만5000원·부글북스
그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도시를 마치 신(神)처럼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았다.…한 여성은 “그에게는 신과 같다는 말은 틀렸다. 그가 바로 신이다!”라고 말했다.…그는 존경 받을 뿐 아니라 숭배를 받고 있다. 그가 오늘 당장 선거에 나선다면 투표를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 그의 업무 수행은 눈부셨다. 유례없는 도전에 분연히 맞섰던 줄리아니의 리더십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칫하면 거대한 반역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뻔했다.
두 번째 임기가 끝나 가던 줄리아니의 진영에서 그의 임기를 늘리기 위한 공작을 시작했던 것이다. 시의회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고, 다행히도 그는 재빨리 제 궤도를 찾았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바로 리더 자신이다.”
우리 주변에는 독성 강한 리더(toxic leader)가 즐비하다. 이들이 계속 그 자리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은 리더십의 초점을 지도자에서 지지자에게로 옮긴다.
사람들은 독성을 내뿜는 리더를 떠올리며 소름 끼친다고 떠들어댄다. 그러면서도 그런 리더를 따르고 잘 참아낸다. 심지어 파괴적인 리더가 없을 경우에는 그런 인물을 찾아 나서기까지 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리더십의 이러한 양면가치, 그 역설의 핵심을 탐구한다. 헨리 포드에서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안토니오 사마란치에 이르기까지 타락한 리더들을 폭넓게 훑으며 묻는다. 왜 대중은 파괴적인 리더를 추종하는가?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면서 느끼게 되는 확실성에 대한 갈망, 어떤 움직임이나 운동의 핵심에 서고 싶은 욕구, 영웅적 행위나 고귀한 업적에 동참하려는 노력, 그리고 불멸에 대한 약속…. 이런 것들이 비도덕적 카리스마에 이끌리게 하는 심리적 동력이다.”
그러니 ‘고귀한 비전’을 들먹이는 지도자라면 일단 의심해 보아야 한다. “독성의 씨앗은 이미 비전에 심어져 있다.”
저자는 특히 리더의 비전이 다른 사람을 적, 또는 반드시 추방해야 할 더럽혀진 타자(他者)로 몰아붙이지 않는지 눈여겨보라고 당부한다.
“파괴적인 리더는 편 가르기의 귀재다. 유권자들이 악의를 품고 서로가 서로를 반대하게 만든다. 희생양을 찾아내는 데도 동물적인 후각을 갖고 있다. 아집이 세서 자신의 결함을 보지 못하고 좀체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리더십은 리더와 지지자의 상호관계 위에서 형성된다.
리더십은 소수의 사람이 경쟁을 벌이는 특권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것은 이제 많은 수의 개인에게 주어지고, 그들이 함께 나누는 책임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 “리더십은 모든 구성원이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에 대해 떠맡아야 하는 신성한 의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죄악에 침묵했던 한 목사의 탄식을 들어 보자.
“히틀러가 유대인을 공격했을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관심이 없었다. 히틀러가 가톨릭을 공격했을 때,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관심이 없었다. 히틀러가 노동조합을 공격했을 때 나는 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공격했다. 이제 그 일을 걱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원제 ‘The Allure of Toxic Leaders’(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