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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칼럼]‘과거사정리위’ 다시 구성하라

입력 | 2005-12-03 03:00:00


5년 단임 정권이 근현대사 100년을 고쳐 쓰겠다는 것 자체가 권력자의 단견과 만용의 소산이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역시 과거사 정리 작업을 하게 될 사람들의 역량이 중요하다. 역량은 역사에 대한 이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소신과 균형 감각, 당사자들이 판정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전문성과 신뢰 형성 능력이다.

1일 출범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우선 15명의 위원 중에 제대로 된 역사학자가 없다. 근현대사를 연구했다는 위원이 3, 4명이라지만 이들이 과연 학계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권위자인지는 의문이다.

“역사학자라야만 과거사를 정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적어도 이 분야에 관해 공인받을 만한 비중 있는 저서나 논문 몇 편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들이 내릴 과거사 판정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들 중에는 학자로서의 지적(知的) 활동보다 사회적 활동에 더 열심이라는 소리를 들어 온 인사도 있다. 나머지 변호사, 목사, 스님 출신 위원 9명에 대해선 그들의 사관(史觀)을 살피기 전에 굴곡진 우리 근현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과 애정을 갖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할 판이다.

균형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과거사정리위원장인 송기인(67) 신부가 이미 “주한미군 철수를 위해 남북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로 급진 좌파 성향을 드러냈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지명으로 위원이 된 나머지 7명의 코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상임위원인 안병욱(57·가톨릭대·국사학) 교수는 “지난 세기 한국 사회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외세 의존의 타율적인 역사였다”고 믿는 사람이다. 역시 상임위원인 김동춘(46·성공회대·사회학) 교수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불행은 부일(附日) 협력자들을 처벌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해 왔다.

도식적 좌파 논리에 빠져 있는 이들이 과거사위를 어디로 끌고 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적으로도 이들은 과반수여서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역사도 좌편향의 도마에 올릴 수 있다. 어차피 정권이 주도하는 ‘역사 교정(矯正)’이므로 완벽한 균형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한 시대, 한 사회의 이념 지도(地圖)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했어야 했다. 중립적인 한 학자의 표현대로 “상식(常識)을 대변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예를 들어 근현대사 100년을 논한다면 적어도 원로 사학자 유영익(69·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선생 정도는 과거사위에 포함됐어야 했다. 이승만 정권 연구에 그만 한 학자가 있는가.

조선사(朝鮮史)가 전공이지만 한영우(67·서울대 명예교수) 선생은 또 어떤가. 항일독립운동도 조사 대상이라면 신용하(68·한양대 석좌교수) 선생도 빠져선 안 된다. 성향을 떠나 그만큼 이 분야를 파고 든 학자도 없다.

젊은 층으로 내려가 보자.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라는 돋보이는 책을 쓴 박명림(42·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조봉암 전문가인 박태균(39·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주목해야 할 신진이다.

김용학(52·연세대 사회학) 교수와 같은 정통 사회과학조사방법론 연구자도 한 사람쯤은 포함돼야 한다. 좌파들이 늘 그렇듯이 기계적이고 공허해 거대 담론으로 흐르기 쉬운 논의를 실증적, 계량적으로 받쳐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이런 역량 있는 전문가들은 한 사람도 과거사위에 들어 있지 않다. 이러고서도 제대로 된 과거사 정리가 가능할까. 그 결과를 국민이 수용할 수 있을까. 역사를 이용해 판을 바꾸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과거사위가 조사의 균형성, 공정성,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진실과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은커녕 사회를 극도의 분열과 반목으로 몰아갈 수 있다. 차기 정권의 향배에 따라 조사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과거사위를 재구성해야 한다. 위원 임기 2년에 얽매일 필요 없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노력만이 퇴행적 과거사 교정의 폐해를 그나마 줄이는 길이다.

이재호 수석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