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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5-12-03 03:00:00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한낱 장수로서 한왕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를 평정하러 왔을 뿐이오. 비록 열에 아홉 제나라를 차지했다고는 하나, 나라를 얻는 일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일은 아닐진대 어찌 감히 제나라의 왕위를 넘본단 말이오?”

한신이 놀란 듯 두 손까지 내저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도 괴철은 차분하기만 했다.

“죽은 진왕(陳王=진승)은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 寧有種乎)고 외쳤습니다. 진나라 말기 이래로 군왕이 된 사람 중에 처음부터 왕후(王侯)의 피를 받고 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또 포의(布衣)에서 몸을 일으켜 군왕이 된 이 가운데 대장군보다 더 큰 전공을 세운 이가 어디 있습니까? 내일이라도 한왕께 사자를 보내 제왕의 옥새와 의장을 내려달라고 하십시오. 그 길만이 제나라를 온전히 평정할 수 있는 길일 뿐만 아니라 한왕의 뜻을 잘 받드는 길도 됩니다.”

하지만 그 일의 엄중함을 잘 아는 한신으로서는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는 듯했다. 여전히 두 손을 내저으며 괴철의 권유를 물리쳤다. 괴철이 가만히 한신을 바라보다가 한발 물러서듯 하며 말했다.

“지금 한왕께서는 광무산에서 항왕에게 적잖이 시달리고 있다 들었습니다. 어서 대군을 이끌고 와서 구해주지는 않고 제나라에 머물러 제왕이 되겠다면 틀림없이 대장군을 원망하고 의심하실 것입니다. 정히 그게 싫으시다면 가왕(假王)이라도 청해보십시오. 그리하면 한왕의 원망과 의심을 줄이면서도 제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한신도 슬며시 생각이 바뀌었다. 괴철의 말대로 하는 것이 하루빨리 제나라를 안정시키는 길이 될 듯도 하거니와,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에 다음날로 사자를 광무산으로 보내 한왕에게 그 뜻을 전하게 했다.

한신의 사자가 대강 그와 같은 글을 들고 광무산의 한군 진채로 찾아든 것은 한군이 아직도 항왕이 이끈 초군에게 몰리고 있을 때였다. 오창의 곡식과 관중의 보급 때문에 먹을 것이 넉넉하고 군사의 머릿수가 좀 많아졌다고는 해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패왕의 빼어난 무용과 독이 오른 초군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는 한군으로서는 걸어오는 싸움을 못 본 척 피하는 게 상수였다. 그날도 하루 종일 초나라 군사들의 조롱과 욕설에 시달려 불쾌해 있는 한왕에게 사자가 그 글을 올리자 다 읽고 난 한왕이 벌컥 성을 내며 소리쳤다.

“과인이 여기서 고단하고 구차하게 버티고 있는지 하마 오래거늘, 빨리 돌아와서 돕기는커녕 이 무슨 되잖은 소리냐? 우리 군사는 자칫하면 아래위가 다 어육(魚肉)이 날 지경인데, 저는 그곳에 편안히 머무르며 스스로 서서(自立) 왕이 되겠다는 것이냐?”

그 소리에 한신의 사자가 놀라 움찔했다. 그때 한왕 곁에 서 있던 진평이 가만히 한왕의 발을 밟아 진정시켰다. 장량이 한왕에게 바짝 다가와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