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첫 공연이 될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프로듀서스’(왼쪽)와 5월부터 9월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맘마미아’. 동아일보 자료 사진
《뮤지컬, 뮤지컬, 뮤지컬…. 내년 1월 뮤지컬이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을 ‘싹쓸이’한다. 국립극장을 비롯해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오페라극장)에서 대형 뮤지컬이 줄줄이 막을 올린다. 여기에 8개월 일정으로 뮤지컬 ‘아이다’를 장기 공연하고 있는 LG아트센터까지 합하면 서울 시내 4개 대형 공연장은 온통 뮤지컬 일색이다.》
○ 대형 작품 줄줄이 막 올라
내년 1월 중순부터 국립극장에서는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 ‘프로듀서스’가,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예술의 전당에서는 라이선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차례로 막을 올린다.
내년 대관 일정이 확정된 9월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은 ‘오페라극장’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큼 오페라보다 뮤지컬을 공연하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상반기 오페라 공연 일수는 12일에 불과한 반면 뮤지컬 공연은 138일.
주요 공연장 중 뮤지컬 비중이 가장 큰 곳은 국립극장. 내년 뮤지컬 공연일이 전체 공연일의 44%에 이른다. 올해 국립극장 대극장에서의 뮤지컬 공연 일수는 134일. 하지만 내년에는 161일로 늘어나 1년에 5개월 이상을 뮤지컬 공연으로 채운다. 이 중 70%가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라이선스 뮤지컬.
그러나 뮤지컬의 공연장 독식 현상에 대해 국립극장에서 ‘프로듀서스’를 공연하는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는 “뮤지컬 전용극장이 한 곳도 없는 현실에서 기존 극장에서 뮤지컬들의 장기 공연은 불가피하다”며 “오히려 관객의 요구를 반영하고 전체 공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른 형평성을 맞추자면 뮤지컬 공연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 공연장 공연 일수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소외되는 순수예술
무용이나 오페라 등 다른 공연 장르 예술가들은 ‘뮤지컬 독식’ 현상에 대해 불만이 높다. 공연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가 2000년부터 격년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어온 ‘월드 발레 스타 갈라 공연’이다. 내년 이 공연은 무산됐다. 주최 측이 공연 1년 전에 대관 신청을 했지만 예술의 전당 측이 이미 뮤지컬 ‘맘마미아’가 예약돼 있다며 무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
공연계 일각에서는 국립극장이나 문화관광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예술의 전당, 그리고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세종문화회관 등 공공 기능을 가진 공연장이 상업적 성격이 짙은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무용가 C 씨는 “국공립 극장이 우리의 창작 작품을 세계적으로 키워갈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의 흥행 뮤지컬을 가져와서 돈만 벌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다른 공연장과 달리 예산의 10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국립극장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국립극장이 1년의 절반 가까이를 상업적인 뮤지컬로 채우는 것은 1999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된 후 수익성 높은 상업 공연으로 극장의 수익구조를 맞추려는 안일한 발상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립극장의 전체 공연 일수 중 뮤지컬 비중은 2003년 30%, 2005년 37%, 2006년 4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 극장 기획자는 “창작 뮤지컬이나 작품성 높은 해외 뮤지컬도 아닌 상업성 짙은 라이선스 뮤지컬 공연은 국립극장이 아닌 사설 극장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국공립 극장이 민간 극장과 다른 점은 순수예술을 지키고 키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대관에 대한 장르별 점유율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