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를 도입하면 사학(私學)의 개방형 이사제를 받아들이겠다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협상 전략을 내놨다. 김원기 국회의장의 ‘선(先) 개방형 이사제, 후(後) 자사고 도입’ 중재안이 어제 협상 시한을 넘긴 뒤 내놓은 대안이다. 그러나 이는 원칙도 없고, 타협이랄 수도 없는 ‘추한 빅딜’일 뿐이다. 자사고가 교육의 수월성(秀越性)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해서 사학의 자율성을 해치는 개방형 이사제를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학 운영 주체와 상당수 학부모가 개방형 이사제를 반대하는 것은 이 제도가 반(反)세계화 수업 등에 앞장서 온 좌파적 교사들에게 학교 운영과 인사 및 재정권을 내줄 가능성 때문이다. 사학법인의 피고용자인 교사 등이 추천한 외부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라는 것은 사기업 종업원들에게 경영진의 인사권을 내주라고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학의 건학이념을 흔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한나라당 협상안대로 구체적 사항은 법률 아닌 정관에 기재한다고 해서 근본 원칙이 달라질 리 없다.
자사고는 현재의 6곳에서 더 확대돼야 할 고교평준화 보완책이다. 3년간 시범운영한 결과 수업의 질 개선과 수월성 및 특성화 교육, 학교 선택 기회 확대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평가보고서도 공개됐다. 그런데도 최근 ‘자립형 사립고 제도 협의회’는 현 정권의 평등교육 이념에 편승해 시범 운영 2년 연장을 건의했다. 따라서 즉각 자사고를 확대하도록 정부에 촉구하는 것이 제1야당의 할 일이지, 개방형 이사제를 받는 조건과 흥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4대 쟁점 법안’ 가운데 신문법안을 처리하면서 타협이라는 명분으로 여당에 동조했다. 그 결과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위헌적 언론 악법 탄생에 동참했다는 오명(汚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학법 개정에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한나라당은 현재의 교육뿐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