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는 사랑과 섹스에 관한 일종의 ‘심리 보고서’다. 여자 앞에선 쑥맥인 33세 노총각 광식(김주혁)과, 여자 경험은 형보다 70배쯤 많은 ‘작업 남’ 동생 광태(봉태규)의 서로 다른 사랑을 다룬 이 영화 속 대사들은 애정전선에 나선 청춘남녀의 새까만 속내를 콕콕 짚어낸다. ‘광식이…’에서 ‘사랑의 경구’처럼 등장하는 대사들은 현실적으로 일리 있는 얘길까. 다수의 애정행각을 경험했다고 밝힌 34세 커리어우먼 K 씨가 이 영화 속 대사들에 대해 한마디했다.》
“이런 기계 하나 있으면 어떻겠어요? 여자 몸에 딱 갖다 대면 이 (카메라)노출계처럼 (여자가 원하는 만큼) 수치가 뜨는 거예요. (입에 대면서) 키스 지수 60%, (가슴에 대면서) 애무 지수 80%, (가랑이 사이에 대면서) 섹스 지수 90%…, 이렇게요. 사실 남자들 쪽팔리는 것의 대부분이 여자 마음을 못 읽어서 그렇잖아요.”(광식의 후배 일웅)
→ 남자들의 달콤한 착각이다. 남자는 워낙 단세포적이라 섹스를 ‘부위’별로 구분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여자의 키스를 결정하는 게 입술이고, 애무를 결정하는 게 가슴일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키스와 애무와 섹스를 결정짓는 ‘부위’는 바로 마음이다. 노출계를 심장에 갖다 댈 생각은 아예 떠올리지 조차 못하는 남자들은 그래서 ‘수컷’이다. 여자의 마음만 얻으면 키스도 가슴도 다 열리는 것을….
“아니 이게 지금…, 내복이잖아.”(내복입은 형을 본 광태) “내복 입는 거랑 안 입는 거랑 7도 차이난대.”(광식)
→ 에어메리는 성욕의 적이다. 보온메리를 입은 장동건을 상상해 보라. 구미가 당기겠는가. 메리야스를 입은 남자는 소심하고 자기 보호적이란 이미지를 준다. 특히 에어메리의 장딴지까지 올라온 검은 양말은 끔찍하다.
“남녀 사이에 매직 넘버는 12야. 무슨 일이 터지는 건 꼭 12번 넘게 잘 때부터 생겨. 그때쯤이면 남자는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여자는 집착할 조짐을 보이지. 12번 자기 전에 헤어져야 ‘쿨’한 거야.”(광태 친구 의동)
→ 남자는 싫증내고 여자는 집착한다는 얘기는 맞다. 매번 동일한 강도의 성관계를 거듭하더라도 남자는 첫 관계 때부터 ‘모든 걸 다 했다’고 믿지만 여자는 관계가 늘수록 ‘점점 더 많은 걸 허용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2’라는 매직넘버(?)도 일리 있는 숫자다. 하지만 이건 사람들이 섹스 횟수를 12번까지 꼬박 세어서가 아니다. 대개 남녀는 10번까진 센다. 10은 딱 떨어지는 숫자니까. 10회를 갓 넘긴 ‘11회’도 어쩔 수 없이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12회’부터는 그냥 ‘많다’로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실제론 15번을 했든 18번을 했든 남녀의 머릿속에는 그냥 ‘12번’ 쯤 한 것 같은 착각이 남는 것이다.
“여자들은 내가 몇 번째 (섹스 한) 남자냐고 물으면 꼭 세 번째래. 처음 아닌 건 ‘뽀록’났고, 두 번째라고 하면 처음 다음이니까 남자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셋 이상이면 또 너무 헤퍼 보이니까.”(광태)
→ 맞는 분석이다. 하지만 잊지 말라. 비록 부담스럽더라도 남자가 정녕 듣기 원하는 대답은 ‘세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란 사실을. ‘비교’와 ‘경쟁’에만 눈이 먼 남자들은 1등이 안 될 바엔 2등이라도 해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는다. 바보들…. 숱한 남자가 거쳐 가더라도 여자의 마음속엔 ‘첫 남자’가 아닌 이상 모두 ‘두 번째 남자’로 기억된단 사실을 모르는군.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