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유의선 최현희 위원, 김일수 위원장, 이지은 위원. 전영한 기자
MBC PD수첩 취재팀이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의 연구 성과는 가짜’라는 증언을 얻어 내기 위해 연구원들을 회유 협박했는가 하면, 제작 의도를 속이고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하는 함정취재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MBC 측은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취재윤리 위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방송을 하는가 하면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제작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와 경영진의 퇴진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7일 PD수첩팀 사태에 대한 긴급 좌담을 마련해 과학 연구 성과에 대한 성급하고도 비전문적인 검증 시도와 취재 과정에 무리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한편 혹시 이번 사태가 언론의 탐사보도 의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했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PD수첩팀이 황 교수팀의 세계적 연구 성과를 훼손했다는 비난과는 별도로 취재 과정에서의 협박과 몰래카메라 동원 등 인권 침해 문제를 평가해 봤으면 합니다.
▽김일수 위원장=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듯이 사실을 전하는 기자에게도 오랜 기간을 거치며 확립된 취재윤리가 있겠지요. 진실을 알고 있는 취재원이 자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리는 경우 전통적 취재윤리로는 장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겁니다. 이번 사태도 근본적으로는 진실 추구 의지와 이를 가로막는 장벽 사이에서 생겨난 갈등이라고 봅니다. 황 교수팀의 세계적인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적인 절차 문제로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를 다루려는 PD수첩팀도 같은 취재윤리의 함정에 빠져 사태가 커진 셈이지요.
▽유의선 위원=불법 수집된 자료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처럼 잘못된 방법으로 얻은 공익적 과실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PD수첩팀의 경우 진실을 규명한다는 명분에 집착해 미리 단정해 놓은 결론에 방법론을 맞춰 갔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취재에 성역은 당연히 없겠지만 취재윤리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알권리는 단순한 명분에 불과합니다. 또 부정확한 정보에다 잘못된 방법론을 동원하고 국익을 해치는 결론을 내렸는데도, 이에 동조해 편파적 주장을 내세우는 ‘패거리 언론’ 현상도 엿보여 걱정스럽습니다. 저널리즘은 선의(善意)를 갖고 취재 대상에 대한 편파성을 배제할 때 그 가치가 발휘됩니다.
▽최현희 위원=만약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과 같은 국가기관 또는 대기업의 큰 의혹사건이 취재 대상이고 국민의 알권리에도 부합한다면 취재 과정의 비윤리성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됐을까요. 진실에 접근하는 통로가 제한되고 공공의 이익에 합치되는 사안이었다면 취재윤리에 어긋난다고 비난을 퍼부었을까 의문입니다. 호된 국민적 비판이 쏟아진 이유는 객관적 정황이나 보도 내용을 뒷받침하는 수사 결과가 없는데도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낸 황 교수팀에 ‘실체 없는 협박’을 가했다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이지은 위원=원론적으로 본다면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를 대부분의 언론이 ‘예(yes)’라면서 찬양할 때 ‘아니요(no)’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건강한 언론 풍토라고 생각합니다.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야말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세계적 쾌거라는 찬양 일색의 분위기에서 PD수첩팀이 연구 과정의 윤리 문제를 제기해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은 일단 용기 있는 기획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의 윤리적 일탈은 여론의 비판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절차의 정당성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입니다.
―취재윤리가 왜 중요한지, 특히 불법 또는 비리 의혹을 제기할 경우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언론이 유념해야 할 대목 등에 대해 말씀을 나눠 주시지요.
▽유 위원=취재 과정에서 윤리가 강조되는 이유는 언론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언론이 취재력을 남용할 경우 개인의 인권이나 명예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나 국가, 국민에게 엄청난 손실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했는가, 전문가와의 협의나 도움은 충분했는가, 취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 악의’는 없었는가, 의도적인 편집으로 객관성과 중립성을 잃지는 않았는가 등에 대한 점검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취재 결과도 공익에 부합하고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PD수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김 위원장=요즘 같은 다원주의(多元主義) 사회에서 황 교수의 업적이 ‘신화(神話)’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비판에는 언론마저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였습니다. ‘황 교수’라는 성역을 건드리는 데에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고, 그 결과 무리수가 수반되지 않았겠는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비윤리적인 방법을 동원한 데다 공익성마저 확보하지 못했으니 담당 PD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고 제작 내용이 비난받는 정도는 감수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생명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연구자가 아니라 신(神)이라는 사실을 그동안 일부 언론이나마 걸러 주는 역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황우석 신격화’에 국민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충격이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최 위원=생명산업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집중 홍보되는 상황에서 ‘불치병 난치병 치료’라는 꿈같은 국민의 기대와 희망 때문에 PD수첩팀의 공개적 비판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고 봅니다. 연구 성과를 실용화하고 양산 체제로 진입시키기까지는 차분하게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연구 과정의 윤리문제 제기는 국민 정서상 크게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 핵심 연구 내용의 진위에까지 섣불리 접근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취재윤리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지요.
▽이 위원=국민의 열망이 집중되던 황 교수에 대한 의혹 보도는 결국 MBC가 몰매를 자초하는 형국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PD수첩만이 아닌 전체 언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원주의 사회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서나, 평소 취재윤리의 문제에서나 공동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