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의 핵 억지력이다. 북한이나 중국이 공격을 시도할 경우 미국이 지닌 핵무기에 의해 반격당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되 미국의 핵에 의해 자국의 안정이 지켜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미군 의존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령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 정권이 자국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얼마나 있었을까. 이라크전쟁이 필요 없는 전쟁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북한과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부조리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까. 언뜻 한심하고 공상적인 착상 같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얘기라고 본다.
우선 북한. 북한의 핵개발 목적은 경제 원조 등과 맞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핵 억제에 의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판단해도 좋다. 그러나 1970년대와는 달리 현재의 북한에는 남진 통일 능력도, 그럴 생각도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공격 의사가 없다면 현상 유지를 서로 인정함으로써 북한의 핵 보유를 단념시키는 것, 즉 북한의 체제 존속을 인정하는 대신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물론 북한에 비인도적인 체제가 존속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는 그 정도의 대가를 지불할 만한 성과일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 중국이 가진 핵무기는 미국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서 거의 의미가 없으며 인도에 대항하기 위한 필요성도 없다. 현재의 중국은 무의미해진 핵무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 신세대의 원자력 잠수함과 순항미사일 같은 기술 개발에 의해 파괴력을 높일 것인지, 아니면 지금 상태로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둘 것인지…. 그리고 중국도 다수의 분쟁(대만 문제는 유일한 예외)에도 불구하고 군사행동을 새롭게 일으킬 가능성이 적은, 현상유지 세력이 되었다.
지금 중국에서는 인민해방군을 중심으로 당에 대한 충성을 강화해 ‘국방 제일’ 노선을 확보하려는 보수파와, 경제 성장에 주력함으로써 군사대국 노선에서 벗어나려는 일단의 경제 관료 사이에 권력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투쟁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을 때 중국의 핵이 현실적으로 큰 위협이 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보수파의 힘을 꺾는 것은 동아시아 각국에도 이익이 된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존속을 보장해 동아시아 지역안전보장 틀의 주요한 세력으로서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중국이 안고 있는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줄임으로써 중국의 핵 의존 필요성을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대만 문제는 남는다. 그러나 과거 10년간 중국과 대만의 긴장을 불러온 것은 대만 국회의원 선거 동향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가 보여 주듯 중국 정부를 자극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대만의 여론은 약해지고 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으름장을 어떻게 완화하느냐다. 중국의 핵 감축은 그 제1단계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 중국의 비핵화에 대한 전망이 설 경우 미국의 핵무기에 의존할 필요성도 그만큼 엷어지게 된다. 이는 핵 억지력에 의존하는, 위험한 평화가 아니라 지역 기구를 갖춘 안정된 평화로의 이행이기도 하다. 유럽의 냉전이 끝난 10년 전, 냉전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시아에서도 이제 불가능해 보이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발 나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