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근무연수만 채우면 순경에서 경위까지 단계적으로 자동 승진할 수 있게 하는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경찰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앞으로 3년간 경위로 자동 승진되는 약 2만 명의 경찰관을 활용할 방안이 없으며 자격시험 없이 비(非)간부를 간부로 승진시키는 것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도 특혜시비가 일고 있다. 현재 경위의 수는 전경과 의경을 제외한 경찰 9만4000여 명 중 1만여 명.
이 개정안은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8일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불만 무마용 미봉책”=자동 승진 제도가 도입될 경우 매년 수백억 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되는 데도 경찰은 지구대와 교통사고조사반 등 실무적인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곳 위주로 승진자를 배치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사법경찰관의 자질 저하로 인한 인권침해 및 부실수사 논란이 우려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근속승진에 대한 심사기준을 까다롭게 바꾸고 승진자에 대한 직무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빚어져 경찰대 출신의 모경찰서 과장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경위까지 승진한 사람들이 벌써부터 ‘운으로 승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순경 출신으로 20년 이상 근무한 한 경사는 “승진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기가 저하된 동료들이 많았는데 평생의 한이 풀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최응렬(崔應烈·경찰행정학) 교수는 “몇 년 후 경위가 많아지면 경감 자동 승진을 요구할 것 아니냐”면서 “경찰 인사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비간부 출신의 불만만 잠재우려는 미봉책”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 배경=경위 자동 승진 제도는 경찰의 기형적인 계급 구조와 내부 갈등에서 비롯됐다.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官)인 경위 이상은 사법경찰리(吏)인 경사 이하를 지휘 감독하고 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간부다. 간부 훈련과정을 거친 경찰대 졸업생과 달리 순경 출신은 엄격한 시험과 심사를 거쳐 극소수만 경위가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순경 출신자들은 70% 이상이 30년 넘게 근무하고도 간부가 되지 못해 불만이 컸다.
전현직 순경 출신 등 7800여 명으로 구성된 무궁화클럽은 올해 9월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수사권 논의에 협조할 수 없다”고 경찰 지휘부를 압박했고 여야 국회의원에게 전방위 로비활동을 전개했다.
취임 이후 순경 출신자에 대한 승진할당제 도입 등을 통해 하위직 경찰관을 배려했던 허준영(許准榮) 경찰청장도 처음에는 자동승진제도에 부정적이었지만 정치권이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태도를 바꿨다.
이를 두고 여야 의원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향력이 있는 일선 경찰을 의식한 ‘선심용’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