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과 수필/윤오영 지음·정민 엮음/태학사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수필의 정의는 때로 수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말 역시 수필의 가치를 평가 절하시키는 한 요인이다. 그야말로 신변잡기라 할, 고만고만한 수준의 수필들은 누구나 쓰고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글이 수필이라는 오해를 낳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나 소설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택한 열등한 문학이 수필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윤오영의 수필은 이런 오해와 편견이 우리들의 가벼움과 교만함에서 나온 짧고 치우친 생각임을 일러 준다. 사소한 일상들을 통해 삶의 자세를 일깨우는 독창적 시각과 논리적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깊은 사색과 성찰에서 비롯된 깨달음은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하는 깊이와 진지함이 있다.
조선시대 정종 때 만들어진 깍두기는 소박한 음식이지만 오첩반상에 오른 일품요리다. 되는 대로 막 썰었지만 어육(魚肉)과 어깨를 나란히 하되 오히려 중앙에 놓이게 된 깍두기를 통해 우리는 무법 중의 유법을 배운다.
붉고 아름답지만 생명이 짧은 감이 곶감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또 어떤가? 껍질을 벗기고 시득시득하게 말리는 손질 끝에 하얀 시설이 내려앉는 곶감은 우리들의 사고와 논리가 어떻게 성숙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
뽕잎을 먹고 잠을 자는 과정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하는 누에의 성장 과정도 독서의 양과 질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삶으로 육화되는지를 보여 준다. 누에는 성장과 발전을 위해 최면기와 탈피기를 거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우리의 삶과 논리로 비약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색과 성찰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윤오영 수필의 바탕에는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산문 정신이 깔려 있다. 옛것에서 배워 왔으되 시대에 맞게 변화시켰고, 전에 없던 새것을 만들어 냈지만 법도에서 벗어남이 없다는 뜻이다. 배울 것은 옛 사람의 정신이지 말투나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오영의 수필은 깍두기와 같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서 취하고, 재래에 있던 여러 방법에서 가져오되 새로운 맛을 만들기 때문이다. 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 “말은 다 끝났는데 마음속의 울림은 종소리의 파장처럼 쉬 가시질 않는다.” 글쓰기의 귀중한 모범이 될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