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의 위기를 말할 때면 흔히 권력구조의 문제, 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효용성이 논란의 중심이 돼 왔다. 사실 1987년 ‘6월 항쟁’의 최대 성과물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장기집권을 원천봉쇄한다는 명분 아래 노태우 씨와 3김 씨가 자신들의 집권 기회를 열어놓은 타협의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5년 단임제가 갖는 국정운영의 비효율성 및 구조적 불안정성 등은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
특히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엇갈리면서 노태우 정부 이래 국회는 줄곧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됐다. 지난해 총선에서 나타난 여대야소는 ‘탄핵 역풍(逆風)’에서 비롯된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여소야대는 권력에 대한 국민의 견제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협상과 타협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경우 여소야대는 중간평가의 순(順)기능보다 어떡하든 그것을 뒤집거나 무시하려는 집권 측과 그에 저항하는 야당의 대립으로 만성적인 정치 불안을 야기했다.
따라서 ‘87년 체제’는 이제 그 수명(壽命)이 다했다는 것이고, 대안(代案)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87년 체제’의 위기는 과연 YS, DJ를 거쳐 노무현 정권에 이른 대통령 5년 단임제로 인해 빚어진 것인가. 권력구조의 문제 때문에 ‘민주화 정권’이 잇따라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87년 체제’의 위기는 권력구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가 능력 있는 민주정부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국민의 삶의 질 향상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현실에 비춰 볼 때 권력구조의 문제는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화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기막힌 역설(逆說)이야말로 ‘87년 체제’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임시 의장이 위원장인 국회 운영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국민의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4.6%가 “민주주의보다 경제 발전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대의(代議)민주주의의 중심인 국회에 대한 불신(59.6%)도 위험수위였다. 물론 응답자들이 현재 수준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하게 묻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라고. ‘20 대 80의 사회’로 치닫는 양극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 계속되는 저(低)성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념 대결과 사회 분열이 민주화의 결과라면 그런 민주주의는 싫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懷疑)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능한 민주화 정권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절망적인 것은 현 정권이 위기의 심각성을 읽지 못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1988년 이후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나 현상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에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참여정부의 인기가 없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비토세력이 사회의 중요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국무총리의 눈에는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겨울이 더 추워진 서민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대통령비서실장은 탄핵에서 대통령을 구했던 70%의 국민을 모독하고 있다. 그들 중 다수가 등을 돌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이 ‘비토세력’ 탓이란 말인가. 이런 ‘인식의 지체(遲滯) 현상’으로는 위기 극복은커녕 위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민의(民意)를 왜곡하고 적대(敵對)해서야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노 정권은 ‘87년 체제’의 막내다. 18년 전 6월 빛나던 민주주의의 승리가 막내에 이르러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위기를 알지 못한다. 노 정권의 남은 2년이 너무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