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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세계는 평평하다’…글로벌 경제 장벽 사라지다

입력 | 2005-12-10 02:55:00


◇세계는 평평하다/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김상철 이윤섭 옮김/656쪽·2만6000원·창해

지구는 둥근데 세계는 평평하다니…. 도발적인 책 제목이 우선 눈길을 끈다.

토머스 프리드먼(52)이라는 저자 이름도 독서 애호가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그는 1999년 내놓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베스트셀러로 필명을 세계에 떨친 바 있다.

책을 들춰 보자. 인도의 정보기술(IT) 산업 도시 방갈로르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는 2004년 봄에 그곳 IT 기업들을 둘러봤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 소비자들과 전화로 상담이나 판매 활동을 하는 콜센터에서만 24만여 명의 인도인이 일하고 있을 정도였다. 대다수 미국인은 미국식 영어를 철저한 훈련 과정으로 익힌 상대방이 지구 반대편 인도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한다. 미국 델타항공에 전화를 걸어 항공권을 예약하면 방갈로르 사무실의 인도인이 처리하는 방식이다.

미국인의 소득세 신고업무도 인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회계법인이 미국 회계법인의 하청을 받아 미국 신고양식대로 작성해 넘겨주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대학 회계학과 졸업생이 매년 7만여 명씩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이 회계법인에서 받는 월급은 100달러 수준이다.

“보세요. 지금 우리가 게임을 하는 경기장은 평평해진 겁니다.”

어느 인도 기업인이 저자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비즈니스 활동에서 국경이나 시간 장벽이 사라졌음을 뜻한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 남에게 일을 맡기는 아웃소싱이 지구촌 곳곳에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2004년 가을 리처드 마이어 미군 합참의장과 함께 이라크를 방문하고 군대도 평평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국 네바다 주 넬리스 공군기지에 있는 요원이 원격조종하는 무인 정찰기가 이라크 상공을 날아다닌다. 이 정찰기가 찍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이는 전 세계 미군기지에 보내진다. 각 전문가가 분석한 코멘트는 자막으로 즉시 뜬다. 과거 같으면 군 수뇌부나 받는 이런 정보를 이젠 사병도 노트북컴퓨터로 볼 수 있게 됐다. 한 미군 장교는 “기술 발달 때문에 군대의 위계질서가 무너져 평평해졌고 고급 장교만이 전체 정보를 파악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여기서 ‘평평하다’는 것은 권력관계가 상하 방식에서 수평, 협조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10가지 요소를 꼽았다. 이를 3개 부문으로 묶으면 자유화, 정보화, 세계화로 압축할 수 있다. 소련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자유화 물결, 인터넷 보급으로 급속하게 이뤄진 정보화, 생산원가를 낮추고 시장을 넓히기 위해 진행되는 세계화….

저자는 세계화를 세 단계로 나누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항해한 1492년 이후 1800년까지를 ‘세계화 1.0’ 시대로 명명했다. 국력이 얼마나 강하느냐가 화두이던 때였다. 그 후 대략 2000년까지가 ‘세계화 2.0’ 시대로 당대 주역은 다국적기업이었다.

‘세계화 3.0’ 시대는 21세기이고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개인이다. 개인은 지구촌 어디에 살든 정보화 기기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영향력 발휘 속도는 빠르고 범위는 넓다.

“얘들아,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은 남기지 말고 먹어야지. 지금 중국이나 인도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많단다.’ 하지만 나의 충고는 다르다. ‘얘들아, 숙제는 끝내야지. 중국과 인도에는 네 일자리를 가져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많단다.”

저자가 딸들에게 한 충고다. 지구가 평평한 하나의 거대한 시장판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말이다.

저자는 언론인, 저술가로서 물이 한창 오른 듯하다. 유명인사가 되다 보니 숱한 고급 취재원과 직접 만난다. 이 책엔 유수한 기업의 최고경영자, 각국 정치지도자, 핵심 금융인 등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들과 함께 식사하며, 골프를 치며 마치 허물없는 친구처럼 대화하는 분위기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해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주옥같은 내용을 저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꿰어 낸 목걸이 같은 책이다. 이를 읽으면 거대한 변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아 위기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 세계무대에서 맹활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야망을 품은 한국의 젊은이여, 세계는 평평한 큰 무대이니 맘껏 달려 드높은 기개를 펼치시라. 원제 ‘The World Is Flat’(2005년).

고승철 기자·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