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끝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의 중심에는 군 출신이 아니라 비행훈련원을 거친 1990년 이후 공채 출신 조종사들이 있다. 올여름 25일간 파업했던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386세대다.
공채 출신은 조종사노조에서 숫자로는 45% 안팎이면서 이미 핵심이다. 군 출신은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장교 의식도 남아 있는 데 비해 공채 출신은 노동자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공채 조종사들이 서로 ‘동지’라 부르며 연대(連帶)하는 모습에 군 출신은 허탈해하며 뒷전으로 물러섰다.
며칠 동안 ‘결항’ 표시에 주말 관광객, 무역업자들이 한숨지었고 대한항공 창구에선 이용객과 직원 간에 충돌도 벌어졌다. 노조가 던진 ‘경제 화염병’의 충격은 컸다. 조종사노조도 연말 파업의 파장을 미리 짚어 봤을 것이다. 이들에겐 ‘이익’이 ‘책무’보다 우선적 가치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한때 사회, 민중과 연대하던 386은 이젠 자기들끼리의 연대를 즐긴다. 억대 연봉, 1000만 원대의 성과급 등 단위가 다른 대우로 ‘귀족 노조’ 소리를 듣는 386 조종사의 모습이다. 화두가 ‘참살이(웰빙)’로 바뀐 것일까.
386세대는 아마추어라는 비난을 듣는 ‘집권 386’과 선을 긋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은 여전하다. 뒤집기 파워를 보여 주기 위한 재빠른 연대도 언제나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치권 386은 기대만큼 활동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을 만들어 낸 뒤 후광 효과 덕에 되살아난 일부는 정권 ‘코드’ 속에서 전리품 챙기기에 열심이다. 인권과 자유, 민족을 언제 얘기했느냐 싶게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한다. 정치 승단(昇段)시험이 있다면 벌써 고단자가 됐을 것이다.
민주노총 386 간부들은 광화문 일대 차도를 막는 집회에서 시민의 박수를 받지 못해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다. 민중에 대한 부채(負債)의식에서 나오는 긴장감은 사라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도 전선(戰線)을 형성할 정도가 됐다.
이미지 시대에 영상매체를 방치할 386이 아니다. 카메라와 마이크, 연출기법으로 무장한 PD저널리즘은 시청자 의식교육에 최고 수단이다. 우호적 정권의 엄호를 받는 등 취재 여건이 좋은데도 MBC ‘PD수첩’은 왜 검찰 수사를 언급하며 ‘강압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언행’을 했을까. 일각의 분석대로 적법 절차(due process)를 따지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만 취하려는 386 사고방식에서 나왔다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386그룹은 이제 각계에서 이익단체 역할에 몰두한다. 운동권 386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반미 친북의 특정 이념과 교원평가 거부 등 조직 이기주의의 접합점에 서 있다. 386의 포트폴리오(투자자산 구성)에서 이기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에는 전교조 행태도 투영돼 있다.
오늘의 한국은 미래보다 과거에 집중하는 나라, 세계가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평평한 세상’의 충격을 덜 받은 나라다. 허리 역할을 하는 386이 투자를 더 해야 할 분야는 미래다. 386의 후배 세대인 ‘포스트 386’은 386보다는 자신들 아래의 ‘N(네트워크)세대’에 더 가까운 행동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