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깎은 黃교수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황우석 교수가 11일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병문안을 받고 미소 짓고 있다. 황 교수는 7일 수면장애와 극심한 피로가 겹치면서 탈진해 입원했다. 사진 제공 경기도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진위 논란의 최종 결론은 서울대의 조사위원회가 내리게 됐다.
발표대로 황 교수팀이 서울대에 논문 검증을 요청해 조사가 이뤄지더라도 그 방법과 일정 등은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증의 주체가 서울대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이언스가 지정한 제3의 검증기관이 합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조사 어떻게 이뤄지나
조사 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데이터를 공개해 실험결과만을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면 실험을 재연하는 2단계로 가야 한다.
아예 처음부터 2단계로 가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진위 논란이 극도로 혼란스러운 점을 감안할 때 데이터 공개만으로 의혹이 해소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2단계에서는 황 교수팀이 보유하고 있는 환자의 체세포와 줄기세포 DNA 지문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사이언스는 1998년 1월 30일자에서 경쟁 관계인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1997년 2월 27일)에 실린 복제양 돌리가 진짜 복제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글을 실었다.
이에 대해 돌리를 만든 이언 윌머트 박사는 반복 실험이 진행 중이므로 기다려 줄 것을 요청했으나 윌머트 박사가 속한 로슬린연구소는 제3의 연구기관인 영국 레스터대 알렉 제프리 유전학 교수에게 DNA 지문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돌리의 DNA가 체세포를 제공한 암컷 양의 DNA와 일치한다고 확인돼 논란이 종식됐다.
○ 전 과정 재연하면 6개월 이상 걸려
황 교수팀의 체세포와 줄기세포 DNA 지문만 비교 분석하면 이르면 이틀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황 교수팀이 갖고 있는 체세포와 줄기세포마저 믿을 수 없다면 아예 실험 전 과정을 재연해야 한다. 환자로부터 직접 체세포를 얻어 핵이 제거된 난자와 융합(복제)한 후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두 세포의 DNA 지문을 분석해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치려면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의혹을 모두 해소하려면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줄기세포를 추출하더라도 이를 3, 4일 간격으로 다른 배양접시에 옮기는 절차(계대배양)를 20∼30회 실시하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검증 주체와 절차를 정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어떤 형태의 검증이든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만도 예상 외로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검증 결과 어떤 영향 미칠까
황 교수팀이 갖고 있는 체세포와 줄기세포 DNA 지문 분석을 통해 10개 줄기세포(11개 중 1개는 줄기세포 기준 미달로 정정)의 DNA가 체세포와 일치하면 ‘줄기세포 가짜 의혹’은 완전히 해소된다.
하지만 줄기세포 10개 가운데 몇 개라도 DNA가 일치하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세계 최초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추출한 업적에는 변함이 없더라도 부풀려 게재한 도덕성 실추 때문에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한국 과학자의 국제 학술지 논문 게재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까다로워질 수 있다.
만에 하나 DNA가 일치하는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면 황 교수팀의 모든 연구결과가 허위로 판명될 수도 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 검증 결정 안팎
서울대가 11일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의 사이언스지 논문과 연구 성과에 대한 진상 조사를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황 교수팀과 PD수첩 간의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왜 검증하기로 했나=황 교수팀은 그동안 후속 논문으로 연구 성과를 검증받겠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국내 소장파 생명공학자들의 논문 재검증 요구를 일축한 황 교수팀은 10일 “미국 제럴드 섀튼 박사팀에 파견된 김선종 연구원이 황 교수의 지시에 따라 2종의 줄기세포 사진을 11종으로 부풀렸다”는 PD수첩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자 이를 정면 돌파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팀과 논문의 공동 저자인 섀튼 박사가 근무하고 있는 미국 피츠버그대가 이 논문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고 사이언스 측도 그간의 입장을 바꿔 “줄기세포 DNA 지문 검토 결과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선 것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제3자의 검증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의혹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같이 보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서울대는 자연대 소장파 교수들에 이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스텍 일부 교수까지 검증을 요구했을 때만 해도 유보적인 입장이었으나 당사자인 황 교수가 직접 조사를 요청하자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부산한 서울대와 수염 깎은 황 교수=서울대 안에서는 검증 방식 등을 둘러싼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황 교수팀 논문의 검증을 요구한 서울대 자연대 생명과학부의 소장파 교수들은 검증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의대 농업생명대 측 관계자들은 객관성과 형평성을 위해 이들을 배제하고 외부인이 참여해 검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황 교수를 문병한 한 측근은 “황 교수의 뜻은 서울대와 사이언스가 별도로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언스가 정식으로 요구하면 서울대를 통해 논문을 검증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대 측은 12일 오전 부학장 주재로 교수 간담회를 열어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수의대 측은 황 교수가 복귀한 뒤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언론전담기구’를 설치할 예정이다.
황 교수는 기력을 많이 회복해 적극적인 복귀 의사를 밝히고 있으나 서울대병원 측은 신중한 입장이다.
11일에는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에 이어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와 법정 스님이 황 교수를 문병했다. 이들은 황 교수의 건강은 많이 호전돼 보인다고 전했다.
손 지사는 “황 교수가 수염을 말끔히 깎았으며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노성일(盧聖一·53)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황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노 이사장은 11일 오전 7시 반 방영 예정이던 SBS TV ‘한수진의 선데이클릭’과의 인터뷰에서 “배아줄기세포의 존재 여부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며 “황 교수팀이 줄기세포를 지금이라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SBS는 노 이사장의 인터뷰를 방영하지 않았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