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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 칼럼]균형 잃은 정권의 균등정책

입력 | 2005-12-13 03:03:00


한 나라에서 수도의 비중이 한국처럼 큰 국가도 드물 것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서 살고, 나랏돈의 90%가 수도에서 맴도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문화 예술에서도 미국은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지방 교향악단이 개성과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의 문화적 환경은 척박 그 자체다. 더 심각한 사례는 교육이다. ‘지방대’란 단어 자체가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를 상징한다.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같은 명문대는 문자 그대로 지방대지만 미국에는 그런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모든 것이 서울에 몰려 있고 서울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니 지방은 서울 못 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처럼 돼 버렸다. 흡사 황소 머리(서울)에 강아지 몸통(한반도)이 매달려 있는 듯한 기형적 형상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고쳐야 할 이 심각한 문제를 참여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이란 기치 아래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는 그래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균형발전 정책은 해야 할 일이 빠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들어 있어 성공을 의심하게 한다.

우선 수도권 집중 현상은 국민의 의식구조, 가치관, 전통적 철학과 연관된 대단히 뿌리 깊은 문제다. 따라서 오랜 기간 깊이 연구하고 원인부터 고쳐야 할 과제인데, 정부는 국민의 그런 의식구조를 개선하는 선행 작업을 생략한 채 단순히 현상적으로 접근했다. 이는 마치 폐렴으로 열이 높은 환자에게 강력 해열제를 대량 투여하는 것 같은 대증 요법식 처방인데 이런 것을 의료계에서는 돌팔이 처방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말레이시아의 행정도시에 감탄했다고 하지만 두 나라 국민이 수도에 집착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중요한 차이점을 간과한 채 결과만 놓고 부러워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균형발전 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추진 목적의 순수성에 관한 것이다. 177개 공기업의 지방 이전만 해도 그렇다. 효율성보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분배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결정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 때문이다. 지난 보궐 선거 때 대구 지역의 여당 후보가 공기업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득표한 것이 그런 사례이다. 과거 정권들이 불법 정치자금으로 표를 샀다면 현 정권은 투명함을 외치며 검은돈을 조심하는 대신 이런 식으로 정책을 팔아 표를 구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해로울지는 모르지만 표를 의식해 수립된 정책에서 균형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치단체들에 공기업 유치 경쟁을 벌이게 하고 정부가 링에 올라 공정하게 심판만 봤다면 그 결과는 존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균형발전 정책의 성격이 ‘균형’보다 ‘균등’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의 산업이 비대하니까 잘라서 지방에 주고 지방과 서울의 소득 수준을 높이고 낮춰 균형을 잡는 식이라면 국가 전체로 볼 때 그 결과는 ‘제로섬 게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도시들은 또다시 (이 정권 들어 다른 많은 분야에서 그랬듯이) 하향 평준화의 해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균형 정책’은 현 여권 인사들의 잠재의식 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평등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좋은 말은 대개 실천이 어려운 것처럼 균형이란 좋은 개념도 이를 구체화하려면 한참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이 요구된다. 균형이란 선과 악의 수학적 중간점에 서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에서 옳은 쪽에 서는 것이다. 맥아더 장군 동상 문제 때의 대통령의 말처럼 ‘나쁜 역사’와 ‘좋은 역사’의 중간에 서는 것이 균형 있는 국정 운영이 아니다. 친북 반미의 대학교수 하나 불구속시키려고 검찰에 사상 초유의 지휘권을 발동하는 게 균형 있는 사법 정책이 아니다.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북한의 중간에 서는 것이 균형 있는 외교가 아니다. 남북한 인권에 대해 고루 얘기하는 것이 균형 있는 인도주의이며 북한의 철없는 요구에 대해 단호하게 가르치는 것이 균형 있는 통일 정책이다.

그간의 국정 운영에서 나타났듯이 균형감각 잃은 사람들이 말하는 균형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허구의 단어일 뿐이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 걱정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규민 경제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