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서 11일 백인과 레바논계 주민들 사이에 폭력사태가 발생해 경찰을 포함해 최소 31명이 부상하고 100여 대의 자동차가 파손됐다.
호주 정계에서는 지난달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인종갈등 충돌이 호주에서도 일어나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발단=이번 사건은 4일 시드니 남부 크로눌라 해변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니 해변에서 축구를 하지 말라”며 제지하는 백인 인명구조원 2명을 폭행한 데서 시작됐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인 7일에는 백인 주민 3명이 20∼30명의 레바논계 주민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가 맞았다.
이를 계기로 누군가가 ‘레바논계에 빼앗긴 크로눌라 해변을 되찾자’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고 11일 5000여 명의 백인 주민이 해변에 집결했다.
▽폭력시위=처음에는 축제 분위기 속에 시위가 벌어졌으나 곧 술에 취한 200여 명의 주동자가 중동계 사람들을 마구 폭행하고 이들을 보호하려던 경찰과 부상자를 호송하려던 구급차까지 공격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드니 남부지역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50여 대의 승용차를 타고 달려와 폭력사태가 확산됐다.
레바논계 청년들과 백인 청년들이 야구방망이와 병을 휘두르며 싸웠고, 이 과정에서 100여 대의 차량이 부서지고 화염병도 투척됐다. 경찰은 16명을 체포했으나 술에 취한 일부 백인 시위대는 12일 새벽까지 인종차별 구호를 연호하며 거리를 누볐다.
폭력사태는 인근 지역으로도 번졌다. 울루와레 지역에서는 한 백인 남자(23)가 중동계 청년들과 싸움을 벌이다 칼에 찔려 중태다. 브라이턴르샌즈 지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호주 국기를 길거리에서 불태우는 게 목격됐다.
▽극우단체 개입설=경찰은 주변 지역 통행을 차단하고 경찰 수천 명을 투입해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사건 직후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인종이나 외모, 민족성을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폭력을 비난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경찰청의 켄 모로니 청장은 “폭도의 상당수가 국기를 들고 국가를 불렀지만 호주인답지 않았다”면서 “여성과 구급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는 이번 폭력시위에 독일 신나치 집단과 연관된 호주 극우단체 ‘애국청년연맹’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호주 인구 2000만 명 중 중동계는 약 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