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증진이라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민주주의가 인류의 천부적 조건이며 비민주적 사회들은 과거의 잔존물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결정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미국 정책의 원칙이 민주주의의 확산 즉, 부시 대통령이 즐겨 쓰는 연설 문구의 하나인 ‘자유의 행진’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조지 케넌은 인생 말기에 이렇게 썼다. “진정한 자치정부를 구성하려는 국민은 그것(자치정부)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며 이를 원해야 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그는 “세상에는 언제나 오직 극소수의 민주국가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밖의 국가들은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잘 통치되거나 악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으며, 그 지배집단들에 선진화된 외교관계의 최소 기준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냉혹한 현실주의다.
미국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이렇게 썼다. “자살을 감행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오늘날의 민주국가들 즉, 최근 민주혁명을 이룬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분명히 적용된다.
부시 대통령의 ‘자유의 행진’은 이라크에서 모양 사납게 시작됐다.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서도 근사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두 나라의 민주혁명은 기존 정권에 맞선 국민의 시위로 촉발되어 국제사회의 감시 아래 선거가 실시됐으며 친미 성향의 인물들을 권좌에 앉혔다. 그러나 권력은 더 정교해진 정치 공작을 통해 여전히 지배집단의 수중에 있다. 국가 재정은 일부 개인에게 흘러들어갔다.
민주주의는 천부적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경험이나 철학적 사색을 통해 학습되는 가치관으로 만들어진다. 달성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민주주의는 자유선거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연속적인 진전에 의존한다. 다수 지배와 권력 교체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극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결돼야 한다.
권력자가 개입한 분쟁이라도 법의 판단에 따르고 공유재산과 사유재산의 차이가 수호돼야 하며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적 문화는 역사적 경험과 교육의 산물이다. 손쉽게 수입할 수 있는 정치 일정은 아니다.
낭만주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의 직간접적 계승자들만이 아직도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며 이타적인 데다 민주주의자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백악관을 비롯해 현재 미국에서 가장 힘 있는 인사의 대부분이 루소의 후예들이라는 점은 불행한 일이다.
부시 대통령의 ‘자유의 행진’이 중동과 옛 소련 위성국가들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의 꼭두각시들을 앉히려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공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구적인 민주적 질서를 뿌리내리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안정을 파괴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중동의 민주화를 위한 틀로 제시됐다. 그 다음에는 옛 소련 위성국가들, 이어 러시아, 아마도 그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남 직한 사태의 원형을 제시했을 뿐이다. 구질서는 파괴됐지만 해당 국민의 값비싼 희생을 수반했다. 종종 혼돈스러운 무질서가 그 뒤를 잇는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