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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남성무용포럼’ 만든 까닭은

입력 | 2005-12-14 03:00:00

사진 제공 사진작가 송인호 씨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광부인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권투를 배울 것을 권한다. 그러나 아들이 글러브를 끼는 대신 발레 슈즈를 신고 여자 아이들과 춤추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같은 상황은 요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3일 오후 4시 서울 타워호텔에서는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분야에서 활약하는 30, 40대 남성 무용가 200여 명이 모여 ‘한국남성무용포럼’을 결성했다. ‘여류 시인’, ‘여류 화가’ 등 과거 예술계에서 흔히 써온 ‘여류’라는 용어는, 주류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남성무용포럼’ 출범은 무용계의 주류는 여성이며, 남성은 소수자의 위치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 남성 무용수들의 애환

“처음 발레를 배울 때는 학원이나 연습실에 남자 탈의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전 국립발레단원 이원국 씨·사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역을 맡은 여성 무용가가 파트너인 남자 무용수의 개런티를 책임지는 것이 관례였다.”(무용평론가 김경애 씨·댄스포럼 편집인)

‘춤추는 남성’에 대한 이런 편견은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남성 무용가에게는 “먹고살 수는 있는가?” “혹시 호모섹슈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는다.

병역과 취업 문제 등으로 남성 무용수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 공연 때 체조선수나 연극배우 등이 차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2001년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공연 때도 현대무용 전공자까지 데려왔지만 군무 장면에 필요한 50명의 남자 무용수를 끝내 채우지 못하고 40명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성 무용수에 대한 편견은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를 신는 데서 벌어지는 ‘외설 시비’도 한 원인. 발레 경력 20년이 넘는 이원국 씨는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 ‘남사스러운’ 스타킹 같은 것을 신고 대중 앞에 설까 하고 부끄러워했다”며 “그러나 나중에는 ‘이것이 매력이구나. 그래서 표가 비싸게 팔리는 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대중 앞에 몸을 드러내는 남성 무용수들에게는 ‘호모섹슈얼이 아닌가’라는 편견도 따라다닌다.

현대무용가 손관중 한양대 교수는 “남성적 춤동작이 아직 개발되기 전인 초창기에는 여성적인 취향의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아 성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역동적인 춤 동작이 많이 개발되면서 이런 편견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 편견에서 중심으로

올해는 영국 매튜 본의 발레작품 ‘백조의 호수’,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등 남성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군무를 볼 수 있는 발레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배경에는 이원국, 김용걸, 황재원, 엄재용 씨 등 남성 발레스타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홍승엽, 박호빈 씨 등 젊고 창조적인 현대무용 안무가들도 춤판을 달궈 왔다.

남성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단순히 여성 무용수를 돋보이게 하는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 점차 무대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 다양한 안무를 통해 남성들의 스펙터클한 몸동작이 최대한 활용되면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의 장르마저 허물어지고 있다.

무용평론가 장광열 씨는 “남성 춤은 파괴력과 폭발력을 갖추고 있어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심장을 박동하게 만든다. 남성의 보디라인에서 꿈틀대는 원시적 에너지는 관객을 열광케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한국남성무용포럼’ 대표를 맡은 김긍수 중앙대 교수는 “무용은 남녀간 ‘성(性)’이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2인무가 기본”이라며 “앞으로 포럼에선 남성 무용수를 위한 인력뱅크와 상조회, 춤 정책 연구 등의 사업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