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무협 영화의 주인공들은 고수(高手)가 되기 전에 길고 혹독한 수련을 한다. 17년의 경력을 가진 국내 증권가의 현역 최고참 스트래티지스트인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8년에 걸친 ‘수습’ 경험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대우경제연구소에 입사했을 때 ‘증시의 큰 사이클을 2차례 경험하기 전에는 함부로 시장을 예측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큰 사이클 두 번이면 10년이죠.”
보고서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볼펜으로 얻어맞으면서 혼이 났던 시절. 많은 동료가 차례로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이겨냈다.
“입사 동기 가운데 석박사가 즐비했던 터라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더 성실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덕분에 긴 수련을 버텨낸 것 같아요.”
○ 시장 예측의 최대 무기는 경험
밑바닥부터 거친 이 센터장의 경험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2000년.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모든 증권사가 ‘연말 지수는 1,600’이라고 했던 그 해 초. 그는 홀로 “뚜렷한 상승 요인이 없다”며 하락 전망을 내놓았다.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는 1년 내내 1,000 선에서 500 선까지 하강 곡선을 그렸다.
물론 이 센터장의 전망이 언제나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발생 직후 그는 “당분간 630이 한계”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지수는 이듬해 봄 900 선을 넘어섰다.
그때의 실수와 2002년 미래에셋 운용전략센터(현 운용리서치센터)에서의 부진은 큰 교훈이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내용을 투자자와 공유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장의 큰 그림을 보며 예측이 미칠 영향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리서치의 기본이 돼야 합니다.”
시장을 보는 가장 큰 무기는 오랜 경험을 통한 유추. 이런 점에서 이 센터장은 요즘 후배들의 성급함을 걱정한다.
“예전처럼 차근차근 기본 교육부터 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피터 린치 같은 대가도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이 센터장은 올해 주식시장에 대한 장기 전망 리포트를 5차례 발표했다. 현 증권가 센터장급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미국에서는 60대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흔히 볼 수 있어요. 40대만 되면 글쓰기에서 손을 떼는 국내 풍토와는 대조적이죠. 이코노미스트가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 살아 움직이는 시장에 발 맞춰야
이 센터장의 올해 국내 주식시장 예측은 적중했다. 그는 오래 소외됐던 종목들의 재평가가 내년 상반기(1∼6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종목 선택과 포트폴리오 구성의 중요성이 시장에서 비로소 입증되기 시작했다는 것.
“과거에는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를 무작정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수익이 났죠. 그러나 현 시점에서 기존 대형 우량주의 상승 여력은 크지 않습니다.”
그는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오래 묵은 습관과 편견을 버릴 것을 조언했다. 이 센터장이 지적한 국내 증시 투자자의 대표적인 편견은 IT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이다.
“연말마다 IT에 대해 밝은 전망이 쏟아진 게 벌써 7년째입니다. 어떤 산업이든 공급 과잉이 해소되려면 10년은 걸립니다. 2000년 IT 공급 과잉의 영향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올해 종목별 수익률 차이를 결정한 주요 요인은 과거의 누적 실적.
이 센터장은 “내년 하반기부터는 미래의 실적 전망에 따라 주가 흐름이 결정될 것”이라며 자동차부품과 증권업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종우 센터장은…
△1962년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 △198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증권조사부 △1993∼97년 2월 대우투자자문 국내펀드운용팀 펀드매니저 △1997년 3월∼2002년 2월 대우증권 영업부,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2002년 3월∼2003년 2월 미래에셋 운용전략실장 △2003년 3월∼현재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1999∼2001년 ‘베스트 스트래티지스트’ 다수 선정 △2000년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유공자상 수상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