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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누리 칼럼/김세원]아 유 젠틀?

입력 | 2005-12-15 16:02:00

광고 화면 캡쳐



‘남자고 여자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대학시절 어설픈 휴머니즘 개똥철학을 내세우며 남녀 평등을 설파하고 다녔다. ‘같은 서클(21세기 버전은 동아리) 동지들끼리 연애 질을 하는 것은 근친상간’이란 주장도 서슴지 않아 열애 중인 선후배들의 미움을 산 적도 많았다. 그래선지 한밤중에 느닷없이 즉시 학교 앞 술집으로 와 모자라는 술값을 갚아달라거나 돈을 꿔달라는 부탁은 받았어도 파트너로 축제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남매를 키우면서 개인 차가 있을 뿐 남녀 차이는 없다는 나의 철석 같은 믿음은 부스러져 가고 있는 중이다. 11년의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중3짜리 아들이 어렸을 때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행동을 비교해 보면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

아들은 서 너 살 때 귀지나 코딱지처럼 제 몸에서 ‘생성된’ 산물을 분리하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싫어해서 미장원에 데려갈 때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은 물론이고 떼어낸 코딱지를 도로 붙여달라고 칭얼거린 적도 있었다. 반면 딸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TV광고에 나오는 언니들처럼 머리모양을 해달라고 졸라대거나 귀 후비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을 꿰고 제가 먼저 귀를 후벼달라기도 한다.

얼마 전 출판사를 경영하는 여자 선배와 점심을 먹다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화제에 올랐다. 아들의 기벽에 대해 얘기해 줬더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다. 선배의 남자조카는 어렸을 때 응가를 한 뒤 닦아줬다가 다시 붙여놓으라고 울어대서 된장을 엉덩이 주변에 발라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녀 유아의 이런 행동양식의 차이는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거나 소유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전을 불사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수컷들은 배설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 뒤 침입자가 있으면 공격한다. 이때 자신의 덩치를 과시하기 위해 가능한 높은 곳에 오줌을 눈다. 수캐가 오줌을 눌 때 뒷다리를 번쩍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TV애완동물 프로그램의 ‘개과천선’코너에는 동전, 돌, 종이 등을 먹는 습성을 가진 개들이 등장한다. 남이 자신의 소유물에 관심을 보일 경우 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선배는 남자들은 자신의 소유물이나 주어진 조건에만 집착하는 나머지 변화를 읽고 적응하는데 굼뜬 반면 여자들은 선천적인 조건과 사회적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서 인지 변화에 적응하는데 보다 유연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 21세기 한국 여성들은 잘났다

여성 파워가 갈수록 거세진다. 올해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32.3%, 외무고시는 35%를 기록했다. 여성이 수석을 차지한 공인회계사 시험의 여성합격자 비율도 2002년 17.2%에서 2004년 24.1%, 올해는 27.9%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공인회계사는 물론이고 사법, 외무, 행정, 기술고시 등 주요 국가자격시험 8개의 수석을 여성이 싹쓸이 했다.

사회에서 여성들의 활약을 뒷받침하는 것은 초중고교와 대학 등 학교에서의 여성 우위다. 성적은 물론이고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여학생들이 주도한다. 남학생 학부모들이 남녀공학을 기피하는 것도 내신에 강한 여학생을 의식해서다.

여풍당당의 배경에는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인 농경 및 산업사회에선 물리적으로 강한 남성이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가사와 정서적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지식 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요구되는 능력과 자질이 바뀌었다. 섬세함, 유연성, 창의성, 감수성, 타인에 대한 배려…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은 모두 여성적 특질로 분류될 수 있다.

####아 유 젠틀?

지하철에서 다리를 있는 대로 벌려 앉은 채 이미 차지한 공간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쩍벌남’이나 담벼락에 구멍을 내고 변기를 깨뜨렸다고 허풍을 떠는 ‘복분자남’들에겐 이 같은 변화가 못마땅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가는 전환기에 문명화가 덜 된, 변화에 둔감한 남성들은 나름의 부적응과 상대적 차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자들도 창의성, 유연성, 배려심을 익혀야 한다. 여성들이 생리적으로가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교육을 통해 이를 습득했듯이 말이다.

이 땅의 야생(野生)남 들이 자상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한국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다니엘 헤니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궁금하다. ‘아 유 젠틀?’

김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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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은… 대학에서는 불문학, 대학원에서는 정치학과 경영학(뉴욕주립대)를 공부했습니다. 로이터 펠로우로 프랑스 보르도대와 보르도정치학교에서 유럽공동체법과 정치학,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MBA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동아일보에서 21년 동안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