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연애결혼한 여자는 친정 갈 때 제일 속상하다. “그러게 내가 뭐랬니” 소리 무서워 남편 욕도 못하고 혼자 골병든다. “부모 눈은 틀림없다”며 딸을 중매결혼시켰다가 몇 년째 생활비를 대 주는 엄마도 있다. 이혼 소리 나올까 봐 딸이 전화만 해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누구 처지가 더 나은지 계량하긴 어렵다. 확실한 건 내 인생이든 남의 인생이든, 선택한 사람이 책임져 주는 미덕은 살아 있다는 점이다. 분명 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나나 내 가족이 선택할 기회조차 뺏겼다면 억울한 사회다. 누구한테 책임을 지워야 할지 분통만 터뜨릴 판이다.
나는 전교조 편 이사들이 사립학교를 점령한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다. 동아·조선일보 사설을 읽지 말라며 ‘정보엘리트의 등장은 세계화의 문제점’이라고 가르쳐도 열 받지 않을 수 있다. 서울대에 한 명도 못 보낸 진학지도교사가 “우리 학교에선 이화여대가 서울대”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 내게 내 아이 학교 선택권만 주어진다면 말이다.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마누라 몸매가) 달라진다’는 깜찍한 급훈을 붙일 만큼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게 고교 교육이다. 그런데도 내가 갈 학교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건 부당하다. ‘수업만 잘 받아도 내 직업이 달라질 수 있는’ 학교에 못 가서 취업 못하고, 좋은 배우자 못 만나고, 평생이 구질구질해진다면 정부가 책임질 텐가.
교육 수요자에게 학교 선택권만 돌려주면 사학 악법(惡法) 때문에 야당이 거리에 나설 것도, 여당이 거짓말 통계를 늘어놓을 것도 없다. 학부모 중엔 전교조식 교육이념에 찬성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다. 그런 분들은 “우리 학교에선 전교조가 주인”이라고 정보 공개한 학교를 선택하면 피차 행복하다.
고교평준화 해제나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확대까지는 안 가도 좋다. 약소하게나마 학군 내 학교 선택권이라도 주면 학교는 기를 쓰고 수요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게 학교의 선택법칙이고 시장경제의 경쟁법칙이다. 학교 선택권은 학생 성적을 높이고 사교육을 줄이며 빈부차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고 미국 교육개혁센터(CER)는 결론 내렸다. 물론 ‘나쁜’ 교사들과 이들에게 동조하는 정치꾼은 제외지만.
참여정부는 교육에서만 나와 내 가족의 선택권을 뺏는 게 아니다. 계속 덩치를 키워 내 삶에 간섭하더니 시퍼런 권력을 동원해 느닷없이 법을 바꾸고 ‘사회적 책임’을 들이대 기본권을 침해한다. 사학 악법과 신문 악법을 비롯해 부동산정책, 무섭게 늘어나는 세금과 온갖 기금 부담이 단적인 예다. 사유재산권 보장이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라는 것도 모르고 살던 친구는 “아파트 재건축에 임대주택과 소형 평형 의무건설 조항이란 게 생겨서 50평 주민은 40평으로 가란다. 이게 약탈이 아니고 뭐냐”며 기함을 했다.
이렇게 뜯어 낸 돈으로 정부가 다 해결해 주겠다며 판을 벌려 봤자 살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은 올해 초 183개의 실증적 이론적 자료를 인용해 “정부가 커질수록 경제성장, 생산성 향상, 고용, 삶의 질에 역효과를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막대한 정부지출이론으로 경제를 살렸다고 ‘소문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죽기 전 “정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넘으면 경제에 지장이 온다”고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 지출은 27.3%, 산하기관과 공기업까지 포함하면 35%였다.
19일이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지 3년이다. 2년을 어찌 더 견디느냐는 이도 있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종신 대통령을 부탁하고 싶다. 교육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2년 후 태평스레 떠날 게 아니라 노 대통령은 평생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