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제품 디자인은 1990년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에 있어 디자인은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글로벌 추세에 따라 해외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기업들도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오리지널 디자인을 갖지 못한 기업들은 도태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국내 디자인 수요가 급증했고 제품 디자인 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송민훈(45·모토디자인 대표) 씨는 그 성장의 중심에 있는 제품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송 대표는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에 디자인을 수출하고 있다.》
○ 감성 디자인의 시대
공업 디자인을 전공한 송 대표는 1988년 모토디자인을 설립한 뒤 18년간 ‘제품 디자인’ 외길을 걷고 있다. 1980년대 국내에 제품 디자인 회사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시장이 작았으니 송 대표는 큰 모험을 한 셈이다.
그는 1994년 ‘상아&참’의 자동차 공기청정기 ‘그린터치’의 제품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국내 시장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린터치’는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공기청정기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으로 사각형 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당시에 파격적인 유선형을 내놓아 흐름을 바꿔 버렸다.
또 다른 대히트 프로젝트는 삼성에서 의뢰받은 무선호출기 디자인이다. 당시 무선호출기나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기기들은 검은색 일색으로 투박하고 무표정한 디자인밖에 없었다. 그러나 송 대표는 패션 감각을 가미한 호출기 ‘씽’을 디자인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씽’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을 정도다.
두 프로젝트의 성공은 국내에서도 디자인과 스타일이 제품 판매의 중요 변수임을 부각시켰다.
○ 디자인 수출의 길을 열다
모토디자인은 1년에 60∼80개의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칠 정도로 탁월한 역량을 과시해 왔다. 1990년대 말부터 외국 회사의 디자인 주문이 오기 시작하더니 2년 전부터는 중국 기업들의 주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보기술(IT) 바람을 탄 중국의 기업들이 한국의 디자인 역량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모토디자인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회사다. 프로젝트당 가격이 4만5000달러인데, 다른 한국 디자인 업체들은 2만 달러 안팎이다. 중국 현지의 디자인 회사들은 프로젝트당 8000달러를 받는다.
송 대표는 “중국에서 사업을 못하게 될지라도 디자인 가격만은 지켜야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는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높은 가격 때문에 발길을 돌린 중국 회사들이 30여 곳에 이르지만 중국의 대표적인 IT업체인 레노보는 꾸준히 모토에 디자인을 의뢰하고 있다. 레노보 외에도 디비텔 브이텍 소텍 폭스콘 등 중국 IT업체들도 모토의 고객 중 하나다. 특히 이들 회사는 전략 상품을 출시할 때 모토 디자인을 찾는다.
○ 디자인이 생명력 불어넣어
디자인 수출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와 문화적 역량을 수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이제 유럽과 일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한국 디자인 회사들이 서로 갉아먹는 출혈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토는 이미 유럽시장에 지명도를 얻고 있다. 모토가 디자인한 제품이 유럽에 수출돼 히트 상품이 되면서 현지 경쟁사들이 모토에 디자인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인제니코의 카드체크기, 독일 카틀레인의 디지털 녹화기기(PVR) 디자인이 모토의 작품이다. 미국의 컴팩, 루슨트 테크놀로지, 일본의 히타치도 모토에 디자인을 주문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1000여 개에 이르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송 대표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일까. 그는 “무표정한 물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말한다. 제품은 디자인을 통해 고객의 마음에 파고드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디자인 역량은 시장에서 히트 퍼레이드로 입증됐다. 대외 홍보나 마케팅 활동이 없었는데도 그의 제품 디자인 하나만을 보고 유럽이나 일본에서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은 것도 그 덕분이다.
그는 디자인 수출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보다 해외 시장에서 더 큰 활약을 펼칠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kshin@design.co.kr
사진 제공 디자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