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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안 ‘교사 정치활동 허용’ 전교조 주장 반영

입력 | 2005-12-19 03:01:00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인권 NAP)은 한 국가가 어떤 계층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이른바 ‘인권헌장’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정책의 전환은 기존 정책의 수혜 계층에 대한 이익의 박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사안 하나하나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예고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인권 NAP 권고안을 만들기 위해 인권위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권고안 내용이 대부분 ‘핫이슈’인 만큼 권고안이 발표되면 상당 기간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인권 신장을 위한 진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참여

인권위는 참정권 증진을 위해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 보장을 핵심 추진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획일적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가 개정을 권고한 법 조항은 ‘공무원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과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9조다.

인권위는 “대학 교수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면서 초중등 교사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국교직원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 권고안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단체나 개인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또 허용할 정치적 활동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83만여 명의 공무원과 40만여 명의 교사가 정치에 참여할 경우 정치판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투표 마감시간을 연장하고 전자투표나 우편투표 등 투표방식을 다양화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혼탁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많은 금지규정을 두고 있는 선거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제한만을 남겨두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라는 의견을 냈다. 여야 간 이해득실을 놓고 치열한 정치공방이 예상된다.

◆노사 관계

노동권 증진 방안은 노동계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쟁의행위에 대한 과도한 규제 해소 및 형사처벌과 민사책임 완화,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제한, 직권중재제도 폐지 또는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 축소, 긴급조정제도 대상의 엄격한 제한 등은 지금까지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끊임없이 요구한 사안이다.

이 권고는 회사 측이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상당 부분 빼앗는 것이어서 재계가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교통 통신 등 공공분야의 파업에 대해 국가가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수단도 사라질 수 있다.

인권위는 또 2004년 기준으로 여성 고용 비율이 공기업은 20.9%, 민간기업은 38% 미만으로 매우 낮다며 여성고용촉진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확대하고 퇴직금과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도록 요청해 영세 사업주의 반발이 우려된다.

노동자에 대한 감시 우려가 있는 장비를 설치할 경우 사전에 노동자와의 협의를 의무화하고 감시기술의 도입과 운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토록 권고한 것도 재계와 마찰의 소지가 높다.

◆소수자 보호

500여만 명의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하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법률에 명시하고 객관적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도록 권고했다. 또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사용자 지위나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은 대기업의 근로자 고용 형태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는 재계는 사활을 걸고 이 권고안에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서 독립사업자로 인정한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학습지 교사, 레미콘 지입차주 등 특수고용종사자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보호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또 2004년 말 현재 비정규직의 4대 보험 적용률이 4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사회보험제도의 의사결정 과정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의 참여를 확대하도록 요청했다.

◆국가보안법

인권위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양심·종교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국보법의 추상적 포괄적 용어가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국보법 폐지와 함께 국보법 관련 사범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인권위가 권고안을 정부에 통보하면 국보법 폐지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이념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국보법을 폐지한다면 대체 입법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형법을 개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인권위는 형사사법 절차상 인권보호를 위해 많은 추진과제를 선정했다. 긴급체포 후 곧바로 체포영장을 발부받도록 하고 영장발부 단계부터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또 기소 전 구금일수를 축소하고 경찰조사 단계에서부터 수사기관과 구금시설을 분리토록 제안했다. 유사 사건에 대한 양형의 편차가 심해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 약화되고 있다며 합리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할 것도 권고했다. 하지만 이들 사안은 모두 법원과 검찰, 경찰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기간에 추진이 어려워 보인다.

재정신청제도를 모든 범죄로 전면 확대하고 반인도 범죄나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권 범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거나 정지할 것도 권고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는 참여정부의 방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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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