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는 돈 많은 구단이 아니었다. 그러나 1983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시작으로 모두 9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기아는 모기업의 지원이 튼튼한 구단이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한국시리즈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올해는 창단 후 처음으로 꼴찌까지 했다.
타이거즈라는 같은 뿌리의 두 구단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해태 사령탑으로 9회 우승을 이끈 김응룡 삼성 사장이 말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믿음’이다.
감독 시절 김 사장은 박건배 당시 해태 구단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다. 회식 자리가 있으면 박 전 구단주는 선수단과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반드시 김 사장에게 두 손으로 먼저 술잔을 권했다.
김 사장보다 나이가 적기도 했지만 그보다 감독에 대한 존경의 뜻을 솔선해서 보였다. 나중에 박 전 구단주는 김 사장에게 귀엣말로 “제가 이런 모습을 보여야 선수단과 직원들이 감독님 말을 믿고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덕분에 김 사장은 전권을 갖고 자신의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기아도 의욕만큼은 해태에 뒤지지 않았다. 16일 일선에서 물러난 김익환 기아 구단주 대행 겸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광이었다.
모기업 기아자동차의 요직을 겸하면서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았다. 선수들 개개인과도 친분을 나눴다. 일본에 있던 이종범을 필두로 진필중(LG), 박재홍(SK), 마해영(LG) 등 우수 선수의 영입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김성한 전 감독과 유남호 전 감독은 성적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자신의 야구 색깔을 전혀 나타내지 못한 채 중도 경질됐다. 선수 구성은 화려했지만 중심을 잃은 기아는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에선 투입이 있으면 산출이 있다. 그런데 야구는 이상하다. 쏟은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던 김 전 대행은 결국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선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2년 연속 감독이 중도 경질되는 파동을 겪었던 기아. 옛 해태의 화려한 영광을 재현하며 정상에 복귀할 날은 언제쯤일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