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날인 22일 증권가에 ‘I am F(나는 F학점을 받았다)’라는 제목의 시황 분석 자료가 나왔다. 저자는 한국투자증권 강성모 투자분석부장. 그는 이 글에서 투자전략가로서 외환위기를 미리 간파하지 못한 점을 통렬히 반성하며 자신이야말로 F학점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굿모닝신한증권 박효진 연구위원은 2001년 신한증권 투자전략팀장 시절 자신이 쓴 시황 예측에 대한 반성문을 매달 발표했다.
당시 그는 ‘해외 경제 분야에 대한 분석력의 부족을 통감했다. 지난달 전체적인 시황 예측은 실패한 것으로 본다’ ‘금융주에 관심을 가지라고 권했으나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금융권이 부실기업 수습 과정에 물려 들어가 결국 주가가 하락했다’ 등의 반성문으로 자신을 비판했다.
‘주가학 원론’의 저자인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연구위원도 책에서 추천 종목이 부도 처리된 10여 년 전의 사례를 들며 “당시 나의 부주의에 따른 과오를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을 꾸짖었다.
최근 증권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내 예상이 맞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적중률이 높을수록 몸값도 오르기 때문에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라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예상이 항상 맞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맞혔을 때 자랑하는 것만큼 틀렸을 때 왜 그런지를 솔직히 공개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투자의견을 믿고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이어진 투자자들에게 어떻게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전문가의 도리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 주가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난해 말 각 증권사가 내놓은 올해 주가 전망 가운데 제대로 들어맞은 것은 1, 2건 정도에 불과하다. 코스피지수가 1,000을 못 넘을 것이라고 내다본 증권사가 부지기수였다.
내년 전망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전망 못지않게 올해 무엇이 문제였는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의 반성과 다짐도 함께 듣고 싶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